완성차 업체의 자동차매매사업(중고차 판매) 진출 준비가 거의 끝난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업체는 신규 매매상사 대상 사전영업 움직임도 펼친다.

하지만 기존 중고차 업계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이하 한국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 맞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구가 있으며, 대기업 본사 앞에서는 ‘시위’를 벌이는 등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섰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한 중고차단지 전경 / 안효문 기자
서울 근교에 위치한 한 중고차단지 전경 / 안효문 기자
11일 중고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 업계를 상대로 이미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양대 중고차협회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들은 7월 비공식 회의를 열고 입장을 확인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회의 자리에서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 판매사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부적합 판단을 내리는 즉시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5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이 제한된다. 위반 사업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중소기업 적합업종보다 소상공인 보호를 한층 강화한 제도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는 동반성장위원회 검토 후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최종 결정된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9년 11월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해 검토한 결과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중기부는 5월쯤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정상적입 업무가 어렵다며 가부 판단을 미뤘다. 산업계에서는 11월쯤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한다.

KAMA, 완성차 업체 중고차 진출 막는 건 ‘역차별'
중고차 업계 "제조사가 중고차 판매까지 맡는 건 유래 없는 일"

국내 완성차 5개사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7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매매업 추진을 막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중고차 매매업) 진출 의사를 공식화했다.

당시 정만기 KAMA 회장은 "중고차 경쟁력이 신차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제조부터 판매, 중고차 거래까지 체계적인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중고차 시장 진입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차 업계는 KAMA의 발표에 이어 완성차 업체들까지 직접 진출 의지를 표명한 것에 큰 공포를 느낀다.

한국연합회는 8월 초부터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위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간다. 대전 중기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했고, 9월 초에는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으로 집회 장소를 옮겼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시위를 개최할 수는 없지만, 청와대나 국회에서도 시위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다양한 대응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9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중고차 매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촉구하며 시위에 나선 모습. /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9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중고차 매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촉구하며 시위에 나선 모습. /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곽태훈 한국연합회 회장은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와 유통까지 담당하는 전세계 유례없는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매매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며 "중고차 매매업은 대기업 진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가운데 중기부는 물밑에서 ‘상생협약’ 카드를 준비했다. 유통업과 요식업계의 사례처럼 중고차 시장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병존하되, 대기업의 사업 규모나 방식 등을 사전 협의한 범위 내로 제한해 소상공인 등을 보호하는 일종의 자율협약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상생협약 관련 서류를 중기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양대 중고차협회는 의견서를 내지 않았다. 상생협약안에 호응하는 순간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진출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완성차 업체, 중고차 오프라인 전시장 확보 쉽지 않아
현대글로비스 등 중고차 온라인 플랫폼 출시 가능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신규 수익 창출을 기대한다. 한국에 진출한 수입차 업체들이 이용하는 방식이다. 각 브랜드 회사는 직접 중고차를 매입해 수리하고, 품질을 인증해 판매하는 구조다. 제조사가 차량을 검증한 방식을 도입해 중고차 품질을 관리하고, 대기업이 보증하는 구조를 통해 시세보다 높은 값에 중고차를 판매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강서 인증중고차 전시장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메르세데스-벤츠 강서 인증중고차 전시장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 특히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진출 움직임을 경계한다. 유통 구조상 차령이 짧거나 관리상태가 좋은 ‘A급’ 매물을 완성차 업체들이 싹쓸이 할 수 있어서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매물만 남은 기존 중고차 매매상사에는 악성 재고가 쌓이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중고차 가격 인상도 전망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등 공식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는 브랜드 차량 가격은 보통의 시세보다 10~20% 비싸다.

수입 인증 중고차 업계 한 관계자는 "본사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기준에 맞춰 매입부터 정비, 관리, 판매 등 전 프로세스에 걸쳐 철저한 품질관리를 하기 때문에 매물 상태가 좋다"며 "그만큼 좋은 가격을 받는 것이지 일부러 시세를 높여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산 인증 중고차’의 출범을 기정사실화하더라도 오프라인 판매처 확보는 여의치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관리법 상 국내에서 중고차 판매사업장을 내려면 각 지역별 중고차 매매사업조합에 가입해야 하는데, 완성차 업체들이 매장을 내는 것을 조합에서 승인해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온라인 플랫폼과 품질인증 부여를 연계한 사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종합물류기업 현대글로비스가 중고차 매매업을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차 경매장을 보유했고, 중고차 거래 온라인 플랫폼 ‘오토벨’을 운영 중이다. 현대기아차가 제시한 품질 기준을 통과한 매매상사에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고, 이들은 현대글로비스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인증 중고차를 판매하는 구조를 취하는 방식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부산과 수원 등 신생 중고차 단지를 중심으로 현대글로비스 담당자들이 인증 중고차 사업 설명 등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들은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사업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