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 퀘스트2, 3개월 간 100만대 팔며 ‘흥행’
반면 韓 VR 기기·플랫폼 ‘전무’

게임 인력이 풍부한 한국은 가상현실(VR) 콘텐츠 방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기기와 플랫폼 면에서는 ‘최약체’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한차례 VR 사업에서 발을 뺐던 삼성이 재참전할 수 있다는 소식에 VR 콘텐츠 업계가 기대감을 높인다.

14일 관련업계 및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이르면 연내 신형 VR기기(HMD)를 출시할 전망이다.

삼성은 1월 8일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산하 헤이그국제디자인시스템에 혼합현실(MR) 헤드셋·컨트롤러 특허를 냈다. MR은 VR과 증강현실(AR)을 합한 개념이다. 기존 HMD와 달리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스마트환경을 목표로 하는 기술이다.

삼성이 1월 특허를 낸 MR 헤드셋 / 레츠고디지털
삼성이 1월 특허를 낸 MR 헤드셋 / 레츠고디지털
업계에는 삼성전자가 VR 시장에서 발을 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2015년 처음 출시해 매년 업데이트를 진행하던 기어VR의 업데이트를 삼성전자가 2019년 11월부터 중단하면서다. 삼성전자는 고성능 기기 라인업도 2018년 ‘오디세이 플러스’ 이후 출시하지 않았다.

업계가 삼성전자의 MR 출시 소식에 반색하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실감형 콘텐츠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VR 기기를 삼성전자가 새롭게 출시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한다.

특히 업계는 삼성전자가 잠깐의 공백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기술력을 통해 최근 ‘퀘스트2’로 돌풍을 일으키는 오큘러스를 능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동현 VR콘텐츠산업협회장은 "렌즈 기술을 제외하면 뚜렷한 강점이 없는 오큘러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액정, 디스플레이, 메모리, 칩, 광학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의 기술을 갖췄다"며 "금방 선두주자를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키즈 VR 스타트업 브래니를 이끄는 정휘영 대표는 "3DOF(2차원 위치 인식) 기기에서 6DOF(3차원 위치인식)로 넘어가던 시기에 나온 삼성 오디세이는 타사보다 이른 시기에 나왔고 성능도 굉장히 좋았다"며 "기술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오큘러스 퀘스트2 /
오큘러스 퀘스트2 /
VR 콘텐츠 업계, 삼성 재참전 ‘환영’…기기·플랫폼 영역 발전 신호탄 기대

VR 콘텐츠 업계는 삼성이 VR 경쟁에 재참전할 경우, 그 동안 우리나라가 힘을 쓰지 못하던 기기·플랫폼 영역에서 큰 폭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삼성이 기기와 그에 맞는 플랫폼까지 출시할 수 있다면, 한국 VR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동현 협회장은 "지금은 스팀, 오큘러스 등 외산 플랫폼이 지배하고 있어 스타트업이 뛰어들기 쉽지 않았는데, 국산 플랫폼이 생긴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다"며 "단지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고려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 기기·플랫폼 영역은 페이스북(오큘러스)과 HTC(바이브), 스팀 등 외산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특히 오큘러스는 오큘러스 퀘스트2 출시 3개월만에 글로벌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VR 기기 및 콘텐츠 시장을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유력 기기·플랫폼 중 국산 제품이 없어 한국 VR 콘텐츠 제작자는 콘텐츠를 게시하고 판매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자금 순환 고리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정휘영 대표는 "플랫폼이 없다면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고, 결국 돈이 돌지 않게 된다"며 "국산 플랫폼이 없으면 서비스 기업이 마케팅, 퍼블리싱에 돈을 아무리 써도 오큘러스 플랫폼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것이 되므로 투자를 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협회장은 "궁극적으로는 지난해 7월쯤 협회가 정통부에 제안했던 비대면사회 플랫폼으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며 "한국이 스페이스콜로니(우주식민지) 사업에서는 뒤쳐졌지만, 버추얼콜로니(가상식민지) 사업에서는 앞서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