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최악의 실업통계가 발표됐다. 실업자가 157만명(실업률 5.7%)으로 1999년 IMF 이후 최고 수준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부의 직접적인 고용 지원으로 60대에서는 취업자가 늘어나는 듯 했으나 약발이 떨어지니 전 연령대에서 취업자가 줄고 있다. 급격한 노동조건 강화의 기저효과에다 코로나까지 덮친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문이 닫혀 취업준비생들은 ‘절벽에 매달린 신세’라고 하소연 한다. 일부 대기업들은 매년 연례 행사로 채용하던 정시채용을 수시채용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얼핏 보기에는 수시채용이 좁아진 취업문을 더 닫게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채용을 주장해 왔는데 드디어 이런 정책 전환이 시작되어 다행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어려움을 안겨 주고 있지만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들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화상회의, 재택근무, 비대면 교육, 진료 등이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듯이 노동계도 이번에 새로운 룰을 정할 기회인 것이다.
세계 여러 기관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혁신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노동의 경직성을 들고 있다. 경제계에서도 경쟁력 강화, 인력 재배치, 사업전환의 용이성 등을 위해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노동계와 노동 당국, 정치권은 노동의 안정성을 점점 강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이 상반된 가치로서 합치점을 찾지 못 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업이나 고용주 입장에서는 채용을 주저하게 된다. 과거에는 신입 사원을 많이 채용해 훈련시키고 또 걸러내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꼭 필요한 자리에 꼭 필요한 인력만 골라서 채용한다.
기업이 고용을 주저하는 것은 고용과 해고가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고, 노동자가 노동 안전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사회보험제도의 부족도 있지만 재취업 기회를 찾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경제적인 상황으로 채용의 문이 좁아졌을 때 우리 사회도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수시채용은 취업의 문이 좁아지는 것으로 받아 들여질 수 있지만, 수시채용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면 사실은 재취업의 기회가 많아지고 경력자 시장이 늘어나는 걸 의미한다.
수시 채용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이루어지면 해고당하는 부담도 적어지며, 스스로 희망하는 직장을 찾아 언제든지 전직할 수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노동경직성이 해소될 수 있다.
육아휴직제도를 만들어놔도 잘 활용이 안 되는 이유가 휴직 이후 불이익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기회가 열려 있으면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처럼 편하게 육아에 매달릴 수 있다. 경험에 의하면 회사에서 시행하는 조기퇴직제도(ERP, early retirement program)를 기다려 몫 돈을 받고 다른 직장을 찾는 경우도 허다 하다.
수시채용은 단순히 고용의 문제뿐 아니라 기업 문화와 환경을 바꾸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기업이 기수를 따져가며 수 십 년 동안 연례행사로 정기 채용을 하다 보니 기업 내 다양성이 떨어지고 수직적 문화를 탈피하기 어려웠다. 수시채용이 일상화되면 다른 배경을 가진 인력이 수시로 수혈될 뿐 아니라 기수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
한편 수시채용은 중소·창업기업의 인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인재는 중소·창업기업에서 더 폭넓게 경험하며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대기업 고시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 중소·창업기업에서의 경험과 역량 개발로 대기업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가 수시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대기업에서 중소·창업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물론 중소·창업기업도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늘려야 한다.
결국 수시채용은 노동유연성을 높일 것이며, 강제적인 노동안정성이 아니라 취업 기회확대를 통해 노동자들이 해고나 이직을 좀 더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구의 기업들처럼 노동자들이 해고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인재 고용유지(retain)에 더 신경써야 하는 사회로 바뀌게 될 것이다. 아울러 대기업간, 대기업과 중소·창업기업 사이에 인력 이동이 활발해져 우리 사회에 다양성과 융합의 문화를 확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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