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줄 서평] 곽재식의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입력 2021.03.09 06:00

조선시대의 다양한 괴물을 만날 수 있는 책, 곽재식의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을 소개합니다.

곽재식은 최근 ‘유퀴즈 온더 블럭’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괴물’에 진심인 사람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학박사지만, 괴물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007년 부터 한국 옛 기록속의 괴물에 관한 소재를 수집했으며, 약 280개의 한국 토종 괴물을 발굴해냈습니다.

이 책은 괴물에 대한 단순한 기록 너머를 보여줍니다. 괴물이 기록된 시대상과 기록한 사람의 신분, 저자의 상상력을 덧붙여 풍부하고 세밀하게 괴물을 이해하도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백성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괴물, 조선의 조정 까지 뒤흔든 괴물, 바다 건너 들어온 괴물들을 중심으로 조선의 괴물들을 살펴봅니다. 세부적으로는 괴물 이야기가 유행했던 지역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풍문부터 조선왕조실록 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을 책을 통해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위즈덤하우스
2장. 중종을 떨게 한 연산군의 그림자 : 수괴 (서울)

1. 중종 시대의 괴물 이야기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특히나 물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는 한다.

"밤에 개와 비슷한 부류의 짐승이 궁전 일대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사당에 나타났다. 짐승은 그곳을 지키는 사람에게 쫓겨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소식을 들은 조정이 사람들을 시켜 찾게 하나, 결국 실패했다"

2. 1527년 6월 17일자 기록을 보면 취라갑사(소라 모양의 나팔을 부는 군인)가 가위에 눌려 기절하자 주변의 다른 군인들이 일어나 그를 정신 차리게 하고 간호해주었다. 그때 갑자기 무엇인가 튀어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소리난 쪽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망아지만한 짐승이 방에서 뛰쳐나와 서명문(西明門)쪽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3. "제군이 일시에 일어나서 보았는데,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취라치 방에서 나와 서명문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서소위부장의 첩보에도 ‘군사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놀라 고함을 질렀으며 취라치 방에는 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했습니다"

4. 궁전에서 한밤중에 짐승 같은 것이 튀어나와 돌아다닌 것 까지는 분명한 사실인 듯 하다. 한 사람이 얼핏 목격한 것이 아니라 여럿이서 동시에 보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5.이 이야기에서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짐승의 덩치를 제법 크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최초 목격담부터 크기를 망아지에 비유해 보통 개보다는 컸음을 강조한다.

"도대체 어떤 짐승이 그런 크기로 야밤에 궁전을 뛰어다닐 수 있었을까"

6. 나흘 후 이 사건은 좀더 큰 문제가 된다.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가 불안해하며 궁전을 떠나 잠시 다른 곳에 피해 있고 싶다고 한 것이다.

7. 불안감을 느낀 정현왕후가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이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현왕후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에 가담한 인물로, 비슷한 일이 자신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괴물 사건이 본격적으로 터진 1527년이면 원한에 맺혀 복수하겠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8. 하지만 괴물이 최초로 등장한 1511년 5월 9일 바로 전날 기록을 보면 종묘 담장 밖 화재로 민가 67채가 타버렸다고 한다. 즉 화재로 갈 곳잃은 가축 중 하나가 우연히 종묘 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9. 백성이 화재로 집을 잃고 절망하는 상황에서조차 목숨 건 정치다툼에 정신없이 빠져든 궁전 사람들의 눈에 떠돌이 개가 무시무시한 괴물로 보인 것이라면 어떨까.

10.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정현왕후는 세상을 떠난뒤 남편 성종의 무덤인 선릉에 합장된다.

"지금 선릉은 조선 시대 임금의 무덤 중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기 편한 곳에 있는데, 밤이 되어 환하게 빛나는 강남 거리의 빌딩 숲 사이로 그 모습을 보면 도대체 무슨 괴물이 어디에 있었다는 것일까 싶다"

김예은 기자 yeeun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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