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포장 그래픽카드’ 주의보

입력 2021.06.25 06:50

PC용 그래픽카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부족했던 공급 물량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양새다.
암호화폐 가치 하락과 채굴 성능에 제한이 걸린 신제품 출시가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격 하락으로 그래픽카드 시장이 안정화되는 가운데 ‘재포장 괴담’이 돌고 있다. 새 제품인 줄 알고 산 그래픽카드가 실제로는 암호화폐 채굴 등에 사용된 중고품을 재포장한 제품일 수 있으니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발단은 최근 그래픽카드를 구매한 한 소비자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상품으로 구매한 그래픽카드가 표면의 보호 비닐이 오래 사용한 제품처럼 색이 바래고, 붙어 있는 상태도 너덜너덜해 도저히 새 제품 같지 않았다는 것. 해당 구매자가 이를 커뮤니티에 공유하면서 ‘재포장 제품’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재포장 제품’으로 의심된 그래픽카드의 구매 당시 모습 / 커뮤니티 갈무리
여기에 또 다른 제보자도 자신이 구매한 그래픽카드 역시 재포장 제품으로 의심된다면서 커뮤니티를 통해 제품 사진을 공유했다. 마찬가지로 제품 보호 비닐의 상태가 불량하고, 냉각팬 안쪽에 먼지가 남아있는 등, 마치 사용했던 제품과 같은 상태를 보여줬다.

결국 해당 구매자들은 각각 제품 판매처를 통해 항의했고, 결국 판매처는 물론 해당 제품의 국내 유통사 관계자까지 나서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재포장 제품’이 논란이 되는 것은 암호화폐 채굴용으로 혹사당한 제품을 새 제품처럼 판매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4시간 쉬지 않고 최대 성능으로 채굴 작업에 동원되는 그래픽카드는 개인이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일반 그래픽카드와 비교해 최소 3배~4배 이상 혹사당한 상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실제 사용하다 보면 금방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정상 제품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 시세 하락으로 채굴에 사용하던 그래픽카드가 중고 시장에 쏟아져나온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채굴업자들이 조금이라도 투자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채산성이 떨어진 그래픽카드를 처분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구매자도 채굴에 사용하던 제품을 알고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안 요소가 있긴 해도 일반 중고 제품보다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쓸만한 성능의 그래픽카드를 구할 수 있으니, 오히려 이를 더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재포장 제품은 구매자가 엄연히 중고인 제품을 모르고 구매한다는 점이 문제다. PC 하드웨어에 대한 어느 정도 충분한 경험이 없는 일반 소비자들은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장기간의 그래픽카드 대란으로, 신품 그래픽카드의 가격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폭등한 상태다. 신품처럼 재포장하면 중고로 판매하는 것에 비해 엄청난 차익을 노릴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래픽카드 국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서 암호화폐 사업이 대대적으로 철퇴를 맞으면서 중고 그래픽카드 물량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 현지 일부 업자들이 그래픽카드를 재포장해 수출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전했다. 해당 물량을 정상품인 줄 알고 들여오는 국내 수입·유통사도 모르고 당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최근 하드웨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채굴에 사용한 중고 그래픽카드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들이 공유되고 있다. 일부 인플루언서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채굴 제품을 가려내는 방법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해 올릴 정도다. 당장 그래픽카드를 장만하려는 소비자라면 한 번쯤 확인할 필요가 있다.

채굴에 동원됐을 리 없는 신제품, 즉 처음부터 채굴 제한 기능(LHR) 걸린 그래픽카드 신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채굴에 동원됐던 그래픽카드 물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재포장 제품’이 또 나 있을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때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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