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IRA)을 자축하며 변함없는 시행을 예고한 가운데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그룹의 피해를 우려하는 시선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정부가 IRA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불론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IRA 통과 축하 행사 연설을 통해 "미국에서 만든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며 "나는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드는 엄청난 노고와 재주에 수십억 달러를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또 "IRA로 우리는 미국 전역 고속도로에 50만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미국산'이 될 것이다"며 "이 법은 벌이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에너지 안보를 증진할 것이다"고 말했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내용이 골자다. 또 전기차의 배터리와 배터리의 핵심 광물이 ‘우려 국가’에서 생산된 차량은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연설을 두고 IRA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해당 법이 의회를 통과했고 11월에 미국 중간선거도 치러지기 때문에 개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해당 법 시행으로 인해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모든 전기차는 국내에서 생산되고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전기차 시장이며 성장 가능성까지 높은 시장이다.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70%)에 이어 점유율 2위(9%)에 등극했다.

점유율 상승세를 맞이한 상황에서 IRA로 인해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면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제너럴모터스(GM) 등 경쟁사에게 점유율 우위를 내줄 것이라는 우려섞인 시선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IRA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건립예정인 전기차 전용공장의 조기 착공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상반기에 착공하고 2025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2024년 조기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지공장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IRA 대응을 위한 현지공장 생산량 확대가 노조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단체 협약에 '해외공장으로의 차종 이관 및 국내 생산 중인 동일 차종의 해외공장 생산계획 확정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심의·의결한다'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생산라인이 쉴틈 없기 가동되고 있는 만큼 현지 생산이 국내 고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아직까지 현대차와 노조는 해당 사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

정부 역시 IRA 대응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IRA를 두고 한미 양국이 금주 실무협의를 열어 세부 사항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다. 정부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IRA 개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일단 하위 지침 마련 시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법을 강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 / 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과 정부가 IRA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수정해 ‘맞불'을 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8500만원 이하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이때 생산지, 주요 부품의 원산지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산 전기차에 지급된 보조금 822억5000만원 중 447억7000만원이 미국산 전기차에 지급됐다.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등도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고 있는만큼 한국도 국산 전기차 우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 바이오 관련 행정명령 발동 등 IRA 시행 수순으로 봐야한다"며 "한미가 IRA를 두고 협상을 진행할 경우 미국은 조지아공장 착공시 세액감면 등 혜택이 IRA 시행으로 인한 피해보다 크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 최선의 방안은 현대차 조지아 공장이 지어지는 기간인 2년간을 유예기간으로 설정하는 것이다"며 "이 기간동안 한국산 전기차를 IRA 예외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수정할때도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자칫 FTA와 위배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세계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처럼 한국산 전기차를 우대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은 맞다"며 "전기차 보조금 정책과 관련해 국회 차원의 논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조성우 기자 good_sw@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