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장애=질병’ 결정은 한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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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ICD) 개정안을 확정한 것에 한국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온라인게임산업 종주국으로 게임을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는 나라가 스스로를 구속하는 규제에 앞장선 모양새다. 아이러니다.

우리나라에 게임과몰입이 많아 부작용을 먼저 인지해 나온 선제적 조치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이번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결정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다. 그런데 우리 보건당국과 의료업계는 "우리는 그런 국제적 영향력이 없다"라며 몸을 뒤로 뺀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홍보할 때엔 가능하면 부풀리기 마련인데 이번 보건당국과 의료업계 반응은 뜻밖이다.


. / 조선DB
크리스토퍼 퍼거슨 미국 스탯슨대 심리학과 교수는 5월 국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WHO(세계보건기구)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아시아 국가의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특정 국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이 게임에 가장 정치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두 나라가 WHO에 압력을 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4월 국내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퍼거슨 교수는 "WHO 행보에 아시아 국가가 강력하게 압력을 넣었다는 정치적 분석이 나온다"며 "하나는 중국이고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했다. 상상에 맡긴 나라는 한국이다.

업계는 중국이 사실상 WHO 미가입국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놓는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가장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게임을 의료화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일부 정치인들은 묻지마 살인을 게임 탓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대한중독정신의학회 출신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게임중독법'을 발의했다. 게임을 마약, 알코올 등과 함께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예방을 위해 국가가 중독관리센터를 설립, 치료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강도 높은 산업 규제 방안도 냈다. 게임 중독세 부과 움직임도 있었다.

정부 역시 꾸준히 게임을 문제시 했다. 여성가족부는 0시부터 6시까지 PC온라인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청소년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PC온라인게임 결제한도에 제한을 뒀다.

뿐만 아니라 WHO 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보건복지부 관료를 비롯한 보건의료계 인사들로 구성됐다. 대부분 질병코드화에 찬성 입장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박능후 장관의 국회 답변, 담당 관료들의 토론회 발언 등을 통해 게임장애 질병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WHO 결정에 과연 한국의 입김이 작용할 정도로 우리나라 영향력이 막강한지 의문"라고 말했다.

◇ 한국 기관이 게임 중독 연구 주요 지원

그럼에도 세계 게임업계는 전 세계 게임중독 연구를 지원한 기관 중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게임을 중독현상으로 전제한 정부 발 학계 연구가 늘어났고, 그렇게 생겨난 학술 담론이 이번 WHO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게임 중독과 게임 과몰입과 관련된 연구들이 게임 종류나 이름을 특정하지 않고 ‘게임’이라고만 연구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모든 게임이 중독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치부했다는 비판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공개한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2013~2018년 6년 간 '게임중독'과 '게임과몰입'을 다룬 국내외 논문 671편 가운데 게임 이름을 1개 이상 구체화해서 명시한 논문은 55편에 불과했다.

게임 이름을 적시하지 않는 논문 비중이 90%를 넘었다. 게임을 특정하지 않은 채 연구 대상을 추상화한 셈이다. 게임이 아닌 '게임 유형'으로 범주를 임의로 확장해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전체 논문 가운데 38%인 256건은 플랫폼이나 장르 등 이용 행태가 다른 개별 게임 특성을 무시하고 모두 게임으로 통칭했다.

게임중독 연구 지원 기관과 논문 수. /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논문 갈무리
또 윤 교수 논문에 따르면 게임중독 연구를 주도한 곳은 한국이다. 게임을 바라보는 문화적 특성이나 정책기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2018년 게임중독 관련 국내외 논문 671편 가운데 한국 연구자 논문은 91%로 가장 많았다. 특히 게임중독과 관련해 가장 많은 연구논문을 지원한 곳은 중국 자연과학펀드(NSFC)다. 이들은 50편에 달하는 연구를 지원했다. 뒤를 잇는 기관이 한국연구재단, 보건복지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이다. 이들은 각각 35편, 23편, 17편의 게임중독 연구논문을 지원했다. 총 논문수로 따지면 한국이 91편으로 중국 기관으로부터 나온 85편보다 많다.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세금(게임중독세), 의료수가(질병코드 부여에 따른 의료비용) 등 국내 정치권 및 의료계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WHO 결정을 환영하는 이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본 정신과 전문의 기무라 타카히로는 "WHO 게임이용장애(6C51)는 단지 질병코드로 분류된 것 뿐이다"며 "아무런 강제성 없는 코드에 한국이 시끄러운 것은 정치가의 밥그릇 싸움 목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과잉 의료화 시대가 문제

업계 일각에서는 의료계가 이윤 극대화에 나선 것도 원인으로 꼽는다. 게임 장애 질병화가 전형적인 의료화 또는 환자 만들기 과정이라는 것이다. 의료화는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을 질병이나 질환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하고 치료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즉, 각종 사회환경이나 교육체계를 건드리기보다 질병으로 분류해 치료를 하는 방식이 훨씬 간편할 뿐 아니라 이윤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의료시장이 병원과 의사로 대표되는 공급자 의도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다. 전문성 없는 소비자는 의료진이 이끄는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갑상선암 환자 발생률은 세계 평균 10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구 10만명당 1명 미만인 갑상선암 사망률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는 갑상선암 과다검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6년 8월 세계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역시 ‘갑상선암 급증 주요 원인은 과잉검진’이라는 자료에서 "고소득 국가 여성들이 걸린 갑상선암 50~90%가 과잉검진으로 추정된다"며 "2003~2007년 사이 한국 여성들 갑상선암 90%가 과잉검진 때문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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