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84) 날개 ③… 아내와 나의 절름발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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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04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전위(前衛) 문학가 이상(李箱, 1910~1937)의 단편소설 《날개》를 골랐습니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인 이상은 서울에서 태어나 시인·소설가·수필가·건축가로 활동한, ‘천재’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문제적 작가입니다.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날개》를 필사하면서 찾아보세요. /편집자 주

이상은 1931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병세가 악화되자 1933년 건축공무원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배천온천에서 요양하였다. 여기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서울로 불러올려 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며 동거하였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문학단체 ‘구인회’의 핵심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유하면서 시 몇편을 발표하는 한편,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박태원(朴泰遠)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하융(河戎)'이라는 아호로 삽화(위 사진 외)를 그렸다. 소설 속에서 구보씨가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 등장하기도 한 다방 제비를 1935년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금홍과 결별한다. 이후 서울 각지에서 다방 몇개를 열었다 넘기길 반복한다. 금홍과 살던 때의 경험이 진하게 녹아있는 작품이 1936년 발표된 《날개》다.
날개 ③ (글자수 811, 공백 제외 595)

경성역(京城驛) 시계가 확실히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날은 그 일각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서 있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 하던 쓰레질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눕는 기척을 엿보자마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어 주고 그리고— 하여간 그 이 원을 오늘 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엿보고— 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 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중략)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 방에를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이제야 벼락이 내리려 나보다 하고 숨을 죽이고 두꺼비 모양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을 새어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의 속을 환하게 들여다보는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에 뚤뚤 말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옜소’하고 내 머리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가뿐한 음향으로 보아 지폐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일랑 어제보다도 늦게 돌아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박태원이 직접 삽화를 그린 경우도 있다. 1939년 2월 <조선일보>에 실린 유머 꽁트 《제비》가 그것이다. 자기가 글도 짓고 그림도 그린다는 의미로 ‘自作自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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