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의 오덕이야기] ㉟드래곤볼 탄생에 결정적 역할한 개그만화 '닥터 슬럼프'

김형원 기자
입력 2018.09.01 10:20 수정 2018.09.01 16:09
단행본 만화책으로만 전 세계에서 2억8000만부가 판매된 ‘드래곤볼’의 작가는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다.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를 모태로 드래곤볼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닥터 슬럼프 주인공 ‘아라레’. / 야후재팬 갈무리
닥터 슬럼프에는 한 손에 나무 막대기에 꽂은 똥을 들고 천진난만하게 밝게 웃는 얼굴로 달리는 소녀로봇 ‘아라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1980년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를 통해 처음 등장한 닥터 슬럼프는 한해 뒤인 1981년 4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일본 방송 업계에 따르면 ‘닥터 슬럼프’ 애니메이션은 1981년 당시 시청률 36.9%을 기록했다. 이는 1977년 이후 방영된 일본 TV 애니메이션 중 시청률 순위 3위에 해당한다. 1위는 ‘마루코는 아홉살’, 2위는 ‘사자에상’이다.

닥터 슬럼프의 성공은 만화 독자층을 기존 소년에서 성인 여성층과 미취학 어린이로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1981년 12월에 출간된 닥터 슬럼프 단행본 5권은 초판만 130만부, 6권은 220만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후지TV에 따르면 닥터 슬럼프 만화 단행본은 30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일경산업신문(닛케이)은 1981년 당시 일본 현지 만화 단행본의 초판 최고 판매 기록은 130만부로 ‘도라에몽’이 차지했지만, 닥터 슬럼프가 그 기록을 깼다고 보도했다.

닥터 슬럼프의 인기는 일본에서 멈추지 않고 홍콩과 대만을 넘어 유럽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 애니메이션의 평균 시청률은 30% 이상을 기록했다.

닥터 슬럼프는 북한에서도 방영됐다. 마이니치신문은 1997년 북한에서 닥터 슬럼프가 방영됐다고 전했다. 물론, 북한이 일본 원작자의 동의를 구했다거나 라이선스를 구입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 닥터 슬럼프 아이디어 고갈에서 탄생된 ‘드래곤볼’

애초 토리야마는 만화 닥터 슬럼프 주인공을 소녀로봇 ‘아라레’가 아닌 자칭 천재과학자 ‘노리마키 센베’ 박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발명품을 만들지만 매번 실패하는 과학자를 중심으로 스토리 라인을 꾸려가려 했다.

하지만 당시 만화 편집을 담당했던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아저씨 캐릭터가 아닌 소녀로봇 아라레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리시마에 의해 주인공이 아라레가 된 셈이다.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 만화가 인기 하락으로 짧은 기간 내에 끝날 것을 감안해 만화 연재가 시작되기 전부터 다음 작품을 구상했다. 다행히도 그가 만든 개그 만화는 애니메이션의 성공과 맞물려 빅히트 작품으로 떠올랐고, 토리야마는 계속해서 닥터 슬럼프 속 세상인 ‘펭귄 마을’의 이야기를 그려 나갈 수 있었다.

닥터 슬럼프 주인공 ‘아라레’. / 야후재팬 갈무리
하지만, 닥터 슬럼프의 성공은 토리야마에게 부담이 됐다. 단편집처럼 매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고 가다 보니 소재가 금방 고갈된 것이다.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 연재 중단을 고민했고,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잡지 주간소년 점프는 인기작으로 부상한 ‘닥터 슬럼프’를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점프 출판사 슈에이샤(集英社)는 토리야마에게 닥터슬럼프를 끝내고 3개월 뒤에 새로운 만화를 연재할 수 있다면 닥터슬럼프 만화 연재를 그만둬도 좋다고 결정했다.

토리야마는 기회를 살려 닥터슬럼프 연재 당시 공개했던 단편 만화 ‘기룡소년 드래곤보이’와 ‘톰프 대모험’을 바탕으로 드래곤볼 스토리를 만들었고, 동양고전 ‘서유기’와 1814년 출간된 일본 소설 ‘사토미 팔견전’에서 구슬을 모은다는 내용을 더해 ‘드래곤볼’을 탄생시켰다.

드래곤볼. / 야후재팬 갈무리
1987년 출간된 ‘드래곤볼 모험 스페셜’에 따르면 토리야마가 만든 첫 드래곤볼 원고는 토리시마로부터 서유기와 똑같다는 혹평을 받았다. 토리야마는 서유기와 차이를 두기 위해 두 번째 원고에 SF적 요소를 도입했고, 시대 배경을 현대로 바꿨다. 세 번째 원고는 현재의 드래곤볼에 가까운 스토리로 구성됐다.

◇ 드래곤볼과 세계관 공유하는 닥터 슬럼프

자칭 천재박스 센베와 소녀로봇 아라레가 살고 있는 펭귄마을은 ‘겐고로우 섬’의 한 시골 마을이며, 이 섬은 일본열도 근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만화 속 설정이다.

재미난 점은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은 서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화 드래곤볼 곳곳에는 닥터 슬럼프에 등장했던 캐릭터가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주인공 아라레도 고등학교 졸업 전 상태로 등장한다. 닥터 슬럼프 만화 연재가 끝나던 시점의 세계가 그대로 드래곤볼과 이어지는 모양새다.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속 아라레. / 야후재팬 갈무리
드래곤볼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아라레 성우 역은 닥터 슬럼프 애니메이션에서 아라레를 담당했던 이가 그대로 등장한다. 드래곤볼 55화와 57화에는 아라레가 등장하는데 아라레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성우는 첫 번째 아라레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 ‘코야마 마미(小山茉美)’다. 코야마는 1976년작 ‘들장미 소녀 캔디(캔디캔디)’에서 주인공의 친구였던 ‘애니 브라이튼’ 목소리를 담당하고,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키시리아 자비’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2016년 방영된 드래곤볼 슈퍼(超) 애니메이션 69화에서도 아라레가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손오공은 어린시절 아라레를 만난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며, 아라레가 강했다는 기억을 떠올린 손오공은 아라레와 대결을 요청한다.

드래곤볼 슈퍼에서 초사이어인 블루 손오공과 대결을 벌이는 닥터 슬럼프 주인공 ‘아라레’. / 유튜브 갈무리
손오공은 초사이어인의 정점인 ‘초사이어인 블루’로 변해 아라레에 맞서 싸우지만 아라레 역시 초사이언 블루로 변신한 손오공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준다. 두 사람(정확히는 한 사람과 한 명의 안드로이드)의 대결은 지구를 멸망의 위기에 빠뜨리며, 이 위기를 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분홍색 ‘똥’이다.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닥터 슬럼프의 아라레 중 누가 더 강한가에 대한 질문은 드래곤볼 연재 초기부터 나왔다. 토리야마는 소년 점프 만화 잡지 특별편에서 "손오공보다 아라레가 더 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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