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팀 원브레인(One Team One Brain) 협업에 필요한 기본 원칙을 영국 프리미어 축구팀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6편부터 협업을 가로막는 나쁜 관행과 습관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정부 기관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면 항상 탁자에 회의 자료가 놓여 있다. 공무원이 만든 회의 자료는 특유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제목별 폰트 종류와 크기, 자간 줄간 간격, 약물 등 문서 작성 내부 규칙에 철저하게 따른 듯한 통일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디지털 타자기에 해당하는 PC용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디지털 타자기의 목적은 인쇄이지, 협업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디지털 타자기에 해당하는 PC용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디지털 타자기의 목적은 인쇄이지, 협업이 아니다.
부처나 기관에 따라 조금씩 문서 양식이 다르기는 하나 대부분 문서는 아래아한글의 특징이 녹아 있어 한눈에 정부 기관이 작성한 문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정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도 아래아 한글로 작성한 문서 특징을 보여준다.

인쇄에 최적화된 PC용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문서 사례.
인쇄에 최적화된 PC용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문서 사례.
일반 기업에는 아래아한글 대신 MS워드를 이용해 회의 자료와 보고서를 만든다. 기업에서 유통되는 문서 역시 공공기관 못지않게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CEO 보고용일수록 보기 좋아지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엄격한 형식을 갖춘 보고 문서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협업의 적이다. 우선 형식 위주 문서 작성은 임직원의 시간 자원을 엄청나게 소진시킨다. 보고서 작성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의사결정권자는 중간관리자에게 구두로 업무를 지시한다. 중간관리자는 상사의 말을 메모했다가, 다시 실무자에게 구두로 업무를 지시한다. 보고 문서 작성의 출발은 이처럼 말이다.

지시를 받은 실무자는 자신의 PC에서 워드프로세서로 초안을 혼자서 만든다. 실무자는 어느 정도 문서가 완성됐다 싶을 때, 프린터에서 보고서를 출력해서 중간 관리자에게 제출한다. 중간 관리자는 인쇄물을 보면서 펜으로 첨삭을 해서 실무자에게 건네 수정 작업을 지시한다.

워드프로세서-프린팅-첨삭-워드프로세서 순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몇차례 반복된다. 중간 관리자가 문서가 완성됐다고 판단하면, 이를 프린팅해서 인쇄물을 차 상급자에게 제출한다. 이때 한 번에 통과되지 않으면 다시 워드프로세서-프린팅-첨삭 프로세스를 반복해서 밟는다.

이런 관행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게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없다. 또 CEO, 중간관리자, 실무자가 긴밀하게 협업할 수도 없다. CEO의 뇌를 대신해 실무자가 처리하는 지원 기능밖에 못 한다.

워드프로세서 중심 문서 작업은 재활용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낸다. 원본 파일은 실무자의 PC에 보관되고, 회사 공식 캐비닛에는 최종 인쇄본만 보관된다. 파일 서버에 보관하는 회사는 그나마 지식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다.

워드프로세서 중심 문서 작업은 지시와 보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첨삭과 수정과정에서 이뤄진 대화나 토론은 문서에 반영되지 않는다. 나중에 활용하기 위해 문서를 보면 추상적 정보만 나열되어 있고 진짜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빠져 있다.

타자기의 목적은 인쇄물 배포다. 미국에서 철도산업이 발달하던 시기에 철도 회사가 전국의 근무자에게 근무 수칙을 통일 양식으로 배포해야 했다. 그 필요성에 따라 철도회사는 타자기로 엄격한 형식의 인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타자기는 전동타자기-전용 워드프로세서-PC용 워드프로세서 순으로 변신했다. 오늘날 아래아한글과 MS워드의 핵심 기능은 여전히 인쇄물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상급자가 보기 좋도록 형식미를 구현하는 것을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기업이 애자일 협업을 원한다면 워드프로세서 중심 문서 작업 관행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 타자기를 갖고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협업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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