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업계가 경쟁적으로 중국에 생산시설을 확충한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글로벌 수요를 이끌고 있는 데 따른 대응조치다. 하지만 생산시설 확충이 곧 시장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중국 배터리시장 점유율 쏠림현상이 나타나 자칫 무리한 투자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증폭됐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빅3인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이 중국 공장을 추가로 착공하거나 예정이다. LG화학은 중국 강소성 난징에 이어 최근 중국 회사인 지리자동차와 배터리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중국 톈진과 시안에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SDI는 텐진에 3~4개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시안에 제2공장 설립을 추진 중으로 알려진다. 3사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낮은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8월 장쑤성 창저우에 배터리 공장을 착공한 가운데 최근 두번째 배터리 공장 착공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난징 신강개발구에 있는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1공장 전경. /자료 LG화학
중국 난징 신강개발구에 있는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1공장 전경. /자료 LG화학
업계의 움직임은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시장은 125만대로 30여만대 수준인 유럽이나 미국보다 4배 가량 크다. 시장이 있는 곳에 뛰어들어 수요를 주도적으로 창출하며 글로벌 선두 배터리업계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현지 시장 확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수요도 급증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 시장은 세계 시장의 절반 수준"이라며 "현지 전기차업체로선 안정적인 배터리 조달처 확보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2020년께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한국 브랜드 배터리도 경쟁력을 확보할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자국 업체가 생산한 베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비관세 장벽'을 쳤다.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 중국업체와 한국업체 간 차이는 없어진다. 현지 전기차체와의 협업에 제약 또한 사라진다. 한국기업들의 배터리 기술력이 중국과 비교해 앞서기 때문에 보조금 차별이 없다면 해볼만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분명 기회임에 틀림없지만 위기도 만만치 않다. 이미 중국 전기차 배터리업계가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4월 판매된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중국기업 CATL와 BYD가 1, 2위를 기록했다. 특히 CATL의 점유율은 28.9%로 지난해와 비교해 8%포인트나 늘었다. 우리 기업 중 중국시장에서 가장 앞선 LG화학은 9.9%의 점유율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4위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6, 8위에 그쳤다. 중국 시장이 몇몇 과점업계가 시장을 이끄는 구조가 된다면 우리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기대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최근 CATL와 BYD가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높인다. 두 상위 업체로의 쏠림현상이 심화한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 당국의 보조금 축소와 함께 비상위권 현지 업체들마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 시장 3위 업체였던 옵티멈 나노는 10위권 밖으로 내려갔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업계가 구조 개편 과정 중"이라며 "비상위권 업체들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흡수 합병되는 등 특정 소수 업체들만 살아남는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제품 경쟁력만큼은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만 ‘외산제품의 무덤'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외국 제품에 배타적인 중국 시장이다. 일본업체들도 중국업체에 밀려난 시장이다. 한국업체만 모두 살아남을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결국 우리나라 업체들도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해야 살아남는다. 잇따른 설비 증설은 이를 위한 ‘규모의 경제 ' 실현 노력으로 분석됐다. 성공만 하면 매출과 이익 증대는 물론 세계 시장 점유율 상승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덩달아 커진다. 한국 배터리업체들이 중국에서 ‘위험하지만 보상은 큰’ 베팅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