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페이스북 간 행정법원 판결 후 ‘이용자 보호’ 논란 급부상
정쟁 중 여·야도 한목소리 "역차별 해소는 글로벌 추세"

정부와 국회, 기업, 전문가 등은 한목소리로 토종 ‘콘텐츠 제공 사업자’(CP)에 대한 역차별 해소의 출발점이 이용자 이익 보호라고 강조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사업자의 국내 통신서비스 무임승차를 막고, 이용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변재일(더불어민주당), 김성태(자유한국당), 박선숙(바른미래당), 김경진(무소속) 의원 등이 공동 주최했으며, 200명쯤이 토론회를 찾았다.

18일 토론회는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 결론을 내린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 간 소송의 여파가 크다. 법원은 방통위의 페이스북 관련 과징금 처분 등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망 이용 대가를 내지 않으려고 임의로 해외 통신망으로 접속 경로를 변경해 이용자 피해를 유발했다고 판단해 처벌했다. 하지만 법원은 서비스 이용 속도가 느려진 것을 두고 처벌하는 것은 법에 없다며 처벌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방통위는 법원 판결 후 항소 입장을 밝혔지만, 이용자 보호의 원칙에 대한 입법이 절실하다.

여야 4당 의원, 한목소리로 ‘글로벌 CP 역차별 문제 해소’

토론회를 주최한 4명의 여야 의원은 글로벌 CP의 국내 진출에 따른 이용자 보호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최근 여야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논란으로 정쟁을 벌이지만, 페이스북 판결과 법원 판결과 관련해서는 힘을 한데 모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18일 오전 10시 30분 열린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 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 참가자의 기념촬영 모습. / 이진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18일 오전 10시 30분 열린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 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 참가자의 기념촬영 모습. / 이진 기자
변재일 의원은 "재판부가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준 것은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며 "대형 글로벌 CP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 제도를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은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해소는 세계적인 추세다"라며 "글로벌 CP의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 이익 침해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이용자 중심의 보호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숙 의원은 "항소심 결과와 상관없이 제도 미비 사항을 신속히 마련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고, 김경진 의원은 "세금도, 망 사용료도 제대로 내지 않던 글로벌 CP에 한술 더 떠 이용자 피해를 야기한 책임을 묻지 못하는 상황이 선례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통신망을 둘러싼 국내외 CP 간 역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자 이익 저해 판단하는 규제 실효성 확보하자"

토론회를 여는 발제는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 보호 제도’를 주제로 최경진 가천대학교 교수(법과대학)가 맡았다. 최 교수는 이용자 이익 보호가 국내외 동등 규제 및 해외 사업자에 대한 집행력 확보의 출발점이라고 제시했다.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확대해 글로벌 사업자를 이용자 보호 규제 적용 대상으로 추가하고, 규제 실효성 확보를 위한 피해 발생 시 민원 처리와 피해 구제 창구 명확화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단독으로 글로벌 CP를 처분하기보다 국제 공조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언급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18일 오전 10시 30분 열린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 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 패널 토론 모습. / 이진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18일 오전 10시 30분 열린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 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 패널 토론 모습. / 이진 기자
발제 후 이어진 토론회는 이성엽 고려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신문수 한양대학교 교수(경영학부),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장,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 김남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 반상권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정책총괄과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토론회에서 고립됐다. 국회와 정부, 학계, 전문가 등은 법원 판단에 법 해석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지만, 인터넷기업협회 측은 판결에 동의하며 동시에 이용자 보호 책임이 통신사업자(ISP)와 CP가 공동으로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호 사무총장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일률적으로 추가적인 설비 등 투자를 강제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며 "이는 차별화되고 다양한 서비스 방식을 통해 창의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CP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부당한 정책이고, CP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입법이다"고 말했다.

또 "정부도 ISP와 CP 고유의 역할에 맞는 이용자 보호 정책을 마련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자의 자율적 판단 영역 및 법적 책임을 벗어난 과도한 의무부담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토론회 참가자들은 대체로 역차별 이슈의 핵심으로 이용자 보호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며 법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민수 교수는 "국내 ISP가 우월적 지위를 차지한 글로벌 CP에 대응할 수 있는 적극적인 규제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종관 전문위원은 "법원의 이용자 이익 침해 관련 현저성 여부를 판단한 기준은 해외 기관 및 학자의 자료에 입각한 것이지 국내 이용자 관점의 기준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며 "향후 글로벌 서비스 사업자의 국내 이용자 이익 침해와 관련해 국내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상필 대외협력실장은 "해외 CP들도 정당한 망대가 지급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페이스북 판결을 빌미로 상호접속제도 후퇴 주장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페이스북 사건은 CP가 자사의 망 통제권을 ISP와의 협상에 악용한 것이며, 이용자 피해 유발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정상 전문위원은 "페이스북이 접속 경로 변경에 따른 이용자 이익 침해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현재도 꾸준히 망 상황을 분석하는 등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며 "글로벌 CP의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가 필요하고, 이를 통한 과세 근거 명확화와 망 이용대가 산정의 명확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효창 정보통신위원장은 "정부는 법적 효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역차별을 막는다고 하지만, 그럴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어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남철 통신경쟁정책과장은 "2016년 상호접속제도 고시를 개정한 것은 ISP 간 트래픽 교환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2년마다 시장 상황에 맞춰 고시를 개정 중이다"며 "ISP와 CP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수치화한 자료와 조사를 위해 6개월째 가동 중인 연구반을 통해 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페이스북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박상권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정부가 사업자 간 계약 관계에 직접 관여할 때는 역할 최소화가 필요하다"며 "법이 아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그런 이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