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지상파 사업자 면허 반납 사태가 일어났다. 경기방송은 지난 20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지상파방송사업자 면허를 반납하고, 폐업을 결정했다. 이사회는 '노사 간 불협화음'으로 정상적 경영이 불가피해져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경기방송은 경기도 유일 지상파 라디오 민영 방송사다. 최근 노사갈등으로 짙은 내홍을 겪었다. 2019년 말에는 재허가 기준 점수인 650점을 넘지 못해 재허가를 받지 못할 위기였다. 극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승인을 받아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진 폐업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방통위도, 방송계도 전대미문 행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시청권 보호를 위해 큰맘 먹고 조건부 승인을 해줬던 방통위는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설상가상 정치적 논쟁까지 휘말렸다. 경기방송 모 기자가 소셜미디어에 2019년 대통령 기자회견 당시 자신의 질문이 경기방송 재허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는 기준 미달이었던 사업자를 승인해줬다가 되레 폐업을 조장했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부랴부랴 해명자료까지 내야만 했다.

방통위는 최근 삼성전자가 갤럭시S20 사전예약 기간을 연장하는 과정에서도 체면을 구겼다. 삼성전자는 26일까지였던 갤럭시S20 사전예약 기간을 3월 3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방통위는 정식 출시 전 예약해 개통하는 것이 사전예약인데 27일부터 개통을 시작하므로, ‘갤럭시S20의 사례는 사전예약 연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삼성전자에도 이 같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사전판매 기간을 2월14일부터 3월3일까지라고 공지한다. 물론 사전예약 기간 연장은 방통위가 관여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단말기 유통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의 권고를 단말기 제조사가 버젓이 무시한 모양새다. 최근 이통3사가 사전예약 절차 개선 방안에 합의한 후 불거진 불협화음이기에 더욱 그렇다.

방통위는 규제를 담당하는 국가기구다. 그렇기에 어느 정부기관보다 권위가 중요한 덕목이다. 최근 이 권위를 떨어뜨리는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방통위 안팎에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권위를 잃으면 규제 권한 행사에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방통위의 반응이다. 경기방송 폐업과 관련해 상임위원들은 27일 전체회의에서 한목소리로 경기방송을 질타했다. 여야 추천 인사 구분 없이 불편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김석진 부위원장은 "행정청(방통위)을 모독하고 무시했다"며 질타했다. 한상혁 위원장도 "조건부 재허가에도 자의적인 폐업 결정에 나선 것은 방송사업자로서 기본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자격 미달임에도 청취자 보호와 고용 안정을 위해 기껏 재허가를 내줬는데 그 선의를 경기방송이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배신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괘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규제기관 정책 결정권자들은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책임한 결정을 한 경기방송이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현행 법과 절차를 어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사업 폐업과 관련해 사업자 신고 의무만 있다. 방통위가 경기방송 폐업을 막을 법적인 근거도, 뾰족한 수도 없다. 비대위체제라도 동원해 청취권을 보호하고 방송시설 매각금지를 강제하는 등의 방안을 찾지만 쉽지 않다.

방통위가 청취자 권리를 보호하려면 주파수를 어떻게 빨리 회수하고 처리할 것인지 대책을 찾는 것이 순서다. 혹 경기방송이 법을 어긴 게 있다면 샅샅이 찾아 빨리 고발조치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혹 다른 방송사에서도 이런 일이 나올 것에 대비한 정책적 대안도 찾아야 한다. 엄정하고 현실적인 접근이야말로 규제기관이 권위를 찾는 지름길이다.

다른 한켠에는 이참에 방통위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방송통신 융합과 올(ALL)IP,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새로운 미디어 출현과 같은 환경 변화에 맞게 방통위도 달라져야 한다는 시각이다.

올IP로 전파 자원의 한계가 사실상 사라졌다. 유료방송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기존 지상파 방송사를 압도한다. 심지어 유튜버 한명이 지상파 TV방송사 프로그램이나 뉴스보다 영향력이 크고, 매출까지 올린다. 이런 시대에 방송사업 인허가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통신시장도 다를 바 없다. 사전예약 판매건으로도 확인했듯이 통신서비스업체가 스마트폰업체 눈치를 보는 세상이다. 정작 스마트폰업체는 방통위 규제 대상이 아니다.

방통위는 이런 변화를 읽고 꼭 해야할 일을 더 강화하거나 새 역할을 찾아야 한다. 기존 틀로만 접근하면 이번과 같은 일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 예약판매 마케팅에 과연 방통위가 관여할 게 뭐가 있을지 의문이다. 방통위 역할은 이보다 향후 소비자 편익을 해치는 불법 영업을 제대로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이어야 한다.

방송사업은 선진국처럼 이제 유료방송으로 재편됐다. 그런데 방통위 접근은 여전히 무료 지상파 방송시절 공공성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상태에서 산업계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정부든 민간이든 영(令)이 안 서면 먼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일차적인 책임은 스스로에 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잃었거나, 일방적으로 소통했거나, 혹은 세상 변화를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잇따라 나온 해프닝은 방통위로 하며금 이참에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권고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