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변수’(3월19일) →’거대한 변화’(5월18일) →’가혹한 위기’(6월19일) →’우리의 한계를 시험’(6월23일)

코로나19 사태 확산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장 경영에서 던진 ‘위기’ 발언이다. 코로나 팬데믹 향방을 예측하기 힘들어 지면서, 발언 수위는 계속 높아지는 모양새다. ‘위기’ 의식이 더욱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3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쪼그려 앉아 세탁기 설명을 듣고 있다. / 삼성전자
23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쪼그려 앉아 세탁기 설명을 듣고 있다. / 삼성전자
이 부회장 발언에는 일관성이 있다. ‘위기’를 언급하고 ‘과감한 도전’을 주문했다.

3월에는 "흔들림 없이 도전을 이어가자"고 했고, 5월 중국에서는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달 19일에는 "미래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고 언급했고, 23일에는 "과감하게 도전해 먼저 미래에 도착하자"고 요청했다.

연이은 현장에서의 강력한 발언은 예상치 못한 빠른 변화와 이에 따른 글로벌 선두 사업자로서 위기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매출 90% 가량이 해외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국내와 달리 해외는 매우 심각하다"며 "4차산업혁명시대 변화에 시간이 있을 것으로 봤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는 위기 인식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먹거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두 축으로 달려왔는데 반도체는 대내외 불확실성 그리고 스마트폰은 중국의 무서운 추격에 애플 아이폰 사이에서 ‘넛크래커’ 위치에 놓였다.

이미 거대해진 조직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자, 이 부회장 발언이 세진다는 분석이다.

삼성 출신 벤처기업 대표는 "삼성 조직은 매우 타이트하게 셋팅돼 있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며 "과거 이건희 회장이 세계를 돌며 ‘신경영’을 외쳤듯이 각 조직이 새로운 전략을 짜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법 리스크’에 따른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은 심각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장의 공석은 변화 흐름에 더욱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26일 열린다.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자리로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 결과와 별개로 기소강행도 가능한 상황이다.

외국계 임원 출신 기업 대표는 "삼성전자가 심각한 위기상황인데 검찰이 이렇게 몰아붙이면 어느 곳이 살아남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김준배 기자 j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