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뜨거운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차’다. 완성차 기업이 자동차 반도체 부족에도 불구하고 매달 새로운 전기차를 내놓으며 경쟁을 펼친다. 전기차 대중화가 10년 이내로 다가온 만큼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국내 기업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소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기차 보급’에만 관심을 둔 탓에 여러 부작용이 나온다. 급하게 먹다 체한 꼴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주변에서 확산 중이다.

국내 전기차 커뮤니티와 사용자 모임 등에는 심심찮게 전기차 충전 구역 점거에 대한 불만섞인 글이 올라온다. 전기차가 장시간 점거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에 속하고, 전기차가 아닌 내연차가 충전소를 점거해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거론된 주차구역 부족 문제가 전기차 분야로 확산했지만, 유의미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현행법 상 주차면수가 100대 이상인 주차시설 내 전기차 구역에 일반 차량을 주차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국회에서는 아파트 전기차 충전구역에 내연차가 주차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근본적인 주차시설 부족 문제에 대한 해소책 보다는 미봉책에 가깝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도 풀어나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다. 기존 내연차 중심의 주유소를 전기차용 충전소로 단번에 바꿀수도 없고, 정부 차원의 충전소 강제 할당 제도와 같은 규제도 없다. 그나마 전기차 보급에 도움을 주던 개인용·가정용 충전기 보조금 제도도 2020년까지만 운영이 됐고 지금은 사라졌다. 전기차 구매자가 충전 인프라 확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충전기는 100% 사비를 들여야 하는 실정이다.

전기차 충전 구역에 대한 개정과 세밀한 법제정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전기차 확산에 대한 국민 자발적인 충전구역 양보 문화가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법이 뒷받침 돼야 한다. 무조건적인 희생은 반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량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고려할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없이 전기차 수만 늘어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전기차 대중화 시대는 단순히 전기차의 물리적 숫자만 늘어나는 시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차량 이용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가 충분히 보급돼야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도 가능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전기차 대중화가 연착륙을 이룰 수 있는 법·제도 마련과 편의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