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당국은 ‘고령친화 금융대책’을 공개하며 이동형 점포와 창구 업무 제휴를 통해 고령층의 금융접근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책발표 후 9개월여가 흐른 지금, 시중은행의 이동형 점포 운영은 오히려 제한됐고 은행 점포수는 급격히 줄었다. 금융당국은 이를 바라보면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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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 점포수는 총 6405개다. 전년 같은 기간(6709개)과 비교했을 때 304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점포 폐쇄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문을 닫은 304개 점포 중 78.3%(238개)가 시중은행 영업점이다. 이들 영업점이 사라질수록 금융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업점 폐쇄 속도가 올해 더욱 빨라졌다는 점이다. 올해초부터 10일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폐쇄했거나 폐쇄할 예정인 점포수는 120개에 달한다. KB국민은행이 48개, 우리은행이 30개, 신한은행이 23개, 하나은행이 19개 순이다. 상반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지난해 절반에 가까운 시중은행의 지점이 폐쇄를 결정한 셈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영업점 폐쇄가 까다로워졌다고 해도 영업점 방문 고객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금융 트렌드 자체가 바뀌고 있다"며 "폐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전문가도 자체적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이들이 은행에 반대 의견을 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당국이 지점 폐쇄로 인한 고령층의 불편을 막기 위해 대책을 3월 내놨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도 급격한 점포 폐쇄를 막지는 못했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책의 골자는 은행 지점 폐쇄를 안내하는 시점을 한 달 전에서 석 달 전으로 바꾸고, 외부 전문가를 참여 시켜 점포 폐쇄 전 고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토록 했다.

은행들은 점포를 줄이는 대신 거점 점포를 늘리기로 했다. 또 버스형 이동 점포를 적극 활용키로 했다. 하지만 금융취약계층을 위해 각 은행이 운영하는 버스형 이동 점포수는 최소 2대에서 최대 8대 사이다. 전국을 커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이동형 점포도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으로 운영 중이다"라며 "이동형 점포가 취약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도 활용 가능한 자원이라는 점에서도 지원에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발생한 경기도 남양주시 주상복합건물 화재로 KB국민은행 도농지점과 NH농협은행 남양주시지부가 문을 닫아 이동형 점포가 지점 역할을 대신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당국의 고령친화대책의 구체성이 아쉽다"며 "언제 어디서 이동형 점포가 열리는지 고령층이 알기란 어려울 것이고 산업구조 자체가 디지털 흐름을 탄 상황에서 영업점을 폐쇄하는 은행을 나무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층이 디지털 일거리로 유입된 후 자연스럽게 디지털 금융을 접할 수 있는 방안과 디지털 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지원책에 대한 홍보 방안도 다양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