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64년 올림픽을 열며 세계 최초 고속철도인 ‘신칸센 히카리1호'와 수도 도쿄를 가로지르는 ‘수도 고속도로’, ‘모노레일 열차’ 등을 공개했다. 올림픽 경기 기록을 세계 최초로 컴퓨터 데이터센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경기 영상에 ‘슬로우 모션' 기술을 처음 도입하고 위성방송 기술을 최초로 선보였다. 당시 일본은 기술 선진국을 자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1년 연기되고 무관중으로 치뤄지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기술 우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고속 통신기술인 5G는 일본이 아닌 미국 기업 인텔이 선전하고, 현지 1위 통신사 NTT는 기존 기술을 응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쳤다.

일본의 암울한 기술 현주소 속에서도 세계적으로 앞선고 있다 평가받는 것은 ‘로봇 기술' 뿐이다. 일본은 파나소닉과 토요타, 혼다, 소니, 소프트뱅크, 라쿠텐 등 굵직한 현지 대기업들이 참가해 로봇산업을 이끌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2015년 로봇을 차세대 산업으로 지목하고 2025년까지 세계 로봇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파나소닉이 개발한 자율주행 택배 배달로봇 / 파나소닉
파나소닉이 개발한 자율주행 택배 배달로봇 / 파나소닉
일본 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일본 로봇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6000억엔(16조7000억원)에서 2020년 2조9000억엔(32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NEDO는 2035년 일본 로봇산업이 9조7000억엔(10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NEDO는 현재 로봇산업에서 산업용 비중이 높지만 2025년에는 서비스 로봇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분석했다. 현지 서비스 로봇시장 비중은 2015년 23.3%에서 2020년 35.8%로 성장했다. 2025년에는 50.3%로 높아진다는 전망이다.

코로나19 여파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현지 서비스 로봇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다.

가전업체 파나소닉은 카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서 올해 2월부터 택배 배달로봇 실증실험을 시작했다. 해당 로봇은 AI와 센서를 통해 장애물을 피해다니며 목적지까지 물건을 배송한다. 주행이 곤란한 상황에서는 관제센터를 통해 원격으로 조작된다.

현지 우체국인 일본우편은 이보다 앞선 2020년 10월부터 택배 배달로봇 실증실험을 시작했다. 로봇개발은 현지 벤처기업 ZMP가 맡았다. ‘데리로'란 이름이 붙여진 택배 배달로봇은 레이저 센서와 카메라로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과 자전거 자동차를 피해가며 물건을 배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라쿠텐의 배달로봇, 택배와 슈퍼마켓발 식료품을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 라쿠텐
라쿠텐의 배달로봇, 택배와 슈퍼마켓발 식료품을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 라쿠텐
일본 대표 e커머스 라쿠텐과 아마존도 택배 배달로봇 실험을 진행 중이다. 라쿠텐은 현지 대형마트 세이유와 손잡고 배송실험을 진행했다.

일본이 택배 배달로봇에 힘을 쏟는 이유는 코로나19 여파 e커머스 수요 폭발로 물류량은 늘어났지만, 택배 배달원 수는 제자리 걸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현지 택배물량은 2020년 4~9월 기준 현지 택배배송업체 야마토가 전년 동기 대비 13%, 우체국택배가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택배 배달을 위해 수취인 집을 다시 방문하는 ‘재배달율'이 택배업계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번진 상태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택배 재배달율은 2020년 기준 13%쯤이다. 배달원 수도 부족한데 다시 물건을 배달해야 하니 업무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음식배달 플랫폼을 중심으로 서비스 로봇산업이 성장세를 보인다. 대기업 참가도 LG전자 뿐이라 일본과 비교하면 규모적으로 열세다.

LG전자는 배달의민족(이하 배민)과 손잡고 2020년 8월부터 배달로봇 실증실험을 시작했다. 배민은 최근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에서 실내형 자율배송 로봇 서비스도 선보였다.

LG전자와 배민은 음식점부터 소비자 문앞까지 상품을 전달하는 차세대 배달로봇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배민 차세대 배달로봇의 기반이 될 ‘딜리 드라이브' / 조선DB
배민 차세대 배달로봇의 기반이 될 ‘딜리 드라이브' / 조선DB
배민 한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차세대 배달로봇 ‘딜리 드라이브Z’를 실전 투입시킬 계획이다"며 "해당 로봇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앞까지 배달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상용화 시기는 로봇은 투입시기에 맞춰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기업 로보티즈도 모바일 식권 업체 벤디스와 손잡고 점심식사 배달 서비스 시범 운영에 나선 바 있다. 이용자는 앱을 통해 예약 주문과 결제는 물론 배달 로봇의 위치 정보도 받을 수 있다.

국내 배달로봇에 대한 시장 수요는 상당하다. 시장조사업체 럭스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 배달로봇의 전체 배송물량 처리 비중은 20%를 차지하고 시장 규모는 5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유통업계는 배달로봇 상용화는 2025년쯤으로 예측한다. 정부의 로봇산업 규제혁신 로드맵을 기반으로 한 추정치다.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로봇 전문기업 20개를 육성한다. 시장규모는 20조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