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가 아마존을 무기로 e커머스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지만, 유통업계는 11번가의 아마존 카드가 실적 향상 보다 기업공개(IPO)용으로 더 활용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1번가가 아마존을 통해 해외직구 시장을 장악해도 쿠팡·네이버·이베이(신세계) 3강구도를 무너뜨리기 어렵고, 해외직구로 마진을 쥐기 힘들어 실적 향상에도 별다른 도움이 못된다는 분석이다. 반면 주식시장에서는 아마존 협업이 11번가 상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이상호 11번가 대표 / 11번가
이상호 11번가 대표 / 11번가
25일 e커머스 관계자들은 8월 31일 출범하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가 11번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역부족이라고 평가한다. 배송비 부담을 줄인 것은 매력적이지만 부족한 상품가짓수와 경쟁사 대비 느린 배송 속도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1번가에 따르면 11번가 내에 자리잡을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에는 아마존의 모든 상품이 들어서지 않는다. 미국 아마존이 한국으로 배송가능한 상품만 표시된다. 현재 아마존닷컴에서 사용자 지역을 한국으로 바꿨을 때 표시되는 상품과 동일하다. 미국 내 수요가 높은 가성비 상품과 마니아 선호 상품은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1번가가 아마존을 내세웠지만 ‘상품 정글'이라 평가받는 아마존의 매력을 진정으로 끌어냈다 보기 어렵다.

쿠팡과 이베이 G9 등 국내 주요 온라인몰에서 이미 아마존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도 11번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해외구매대행 업체들이 입점해 판매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해외직구 배송속도 경쟁이 불붙은 것도 11번가의 아마존 협업 의미를 퇴색시킨다. 11번가는 미국에서 한국까지 6~10일, 특별상품의 경우 4~6일을 공약했지만, 경쟁사 쿠팡의 경우 로켓직구 상품을 미국서 한국까지 3~4일만에 배송한다.

11번가가 아마존 협업을 통해 국내 해외직구 시장을 점령한다해도 쿠팡·네이버·이베이 등 국내 e커머스 3강구도를 흔들기는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해외직구 거래액은 2020년 기준 4조1094억원이다. 같은 해 국내 e커머스 전체 거래액 161조원과 비교하면 2.5%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 기준 거래액 10조원 규모 11번가가 4조원 규모 국내 해외직구 시장을 모두 접수해도 26조원 네이버와 21조원 쿠팡, 20조원 이베이코리아와 대결하기에 역부족이란 계산이다.

11번가도 이점을 인지하고 있다. 11번가 한 관계자는 "아마존과의 협업은 어디까지나 차별화 요소지 실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막대한 해외 배송비도 11번가 영업이익을 옥죄는 요소다. e커머스 업계는 해외 배송비용이 높은 만큼 11번가의 무료배송 정책이 영업손실 폭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11번가는 최근 공시를 통해 2분기 영업손실이 전년 동기 대비 90억원 늘어난 14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연간 영업이익도 2019년을 빼면 적자 행진 중이다.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아마존 해외직구 판매량이 늘어날 수록 높은 배송비용 탓에 손해를 보는 구조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1번가 관계자는 "배송비 관련 사항은 영업비밀이다"면서도 "11번가는 사업 성장과 수익성의 밸런스를 중시한다"고 밝혔다.

유통업계는 11번가의 아마존 협업은 실적 향상이 아닌 기업공개(IPO)를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다. 2023년까지 상장을 해야하는 11번가 입장에서는 아마존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 좋은 소재라는 것이다.

11번가는 2018년 SK플래닛 분사 당시 나일홀딩스(H&Q코리아·국민연금·새마을금고)에 지분 18.2%를 매각하면서 50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나일홀딩스와 약정에는 5년내 상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상호 11번가 대표 역시 3월 SK텔레콤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추진하기 위해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아마존 협업설이 나온 뒤로 시장에서 꾸준히 11번가 상장 이야기가 나왔다"며 "시장에서 아마존 협업 여부는 11번가 기업가치를 가르는 판단 소재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1번가 입장에서도 아마존은 상장을 위한 몸값 불리기에 좋은 소재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