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마친’ 비트코인, 8년 만에 제도권 안착

조아라 기자
입력 2021.10.20 06:00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제도권에 진입했다. 2013년 윙클보스 형제가 비트코인 ETF 신청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 8년 만이다. 이번 상장은 미국 의회와 금융당국 등 입법·행정부가 비트코인을 규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결과로 분석된다. 아울러 높은 가격 변동성과 범죄 악용 가능성 등 부작용을 줄이는 한편 비트코인 투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미국은 자본시장의 중심인데다 글로벌 접근성이 높아 가상자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것이란 분석이다.

2017년 말 비트코인 선물 거래 승인, ETF 출시 기대감 본격화

프로셰어즈(ProShares)의 비트코인 ETF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19일(현지시각) 4.5% 상승 마감한 41.98달러(한화 약 4만9000원)로 거래를 마쳤다. ‘BITO’라는 종목 코드(타커)로 상장된 비트코인 ETF는 40.88달러(한화 약 4만8000원)에서 시초가를 형성 한 뒤 장중 5.4% 오른 42.15달러(한화 약 5만원)까지 올랐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비트코인 ETF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카폰 펀드’ 다음으로 거래량이 많았다. 이날 오전 6시 45분 기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2.91% 오른 7877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프로셰어즈(ProShares)는 지난 15일 개정 안내서를 제출하며 상장 채비를 마쳤다. SEC 위원 5명이 프로셰어즈의 비트코인 ETF를 잠정 승인한 직후다. 해외 주요 외신은 SEC가 주요 절차를 마쳤다며 승인 가능성을 높게 봤다.

프로셰어즈는 지난 2017년 9월 업계 최초로 비트코인 선물 ETF를 신청했다. 이전까지는 모두 현물 기반의 비트코인 ETF였다. SEC가 비트코인 ETF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다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SEC에 상장 권한을 공식 요청해 시장 기대가 높았다.

특히 그해 12월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하면서 이같은 호재가 비트코인 ETF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실제 프로셰어즈는 연방 규제를 따르고 선물 기반의 ETF가 SEC의 승인을 받은 사례를 참고했다.

일년 후 프로셰어즈는 첫 고배를 마셨다. 2018년 8월 SEC는 프로셰어즈를 포함해 총 9건의 비트코인 ETF에 대해 승인을 거절했다. 이들 상품이 증권법 거래소행위규칙(Exchange Act Section) 6(b)(5)을 준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해당 법은 거래소가 사기와 조작 행위를 방지하고, 투자자와 공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SEC는 거래소의 시세조작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틀 후 SEC는 이같은 결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승인거절에서 보류로 한 단계 물러났지만 시장에서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올해 비트코인 ETF 두 차례 보류…충분한 검증·사회적 합의 필요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SEC가 비트코인 ETF 승인을 두 차례 연기했다. 지난 6월에는 미국이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면서 비트코인 선물 ETF에 대한 고려사항도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겐슬러 SEC 위원장을 비롯해 규제당국 수장들은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크고 투자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 금융당국과 의회는 비트코인이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탈세 등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높다고 우려했다. 기존 금융체계 안정성을 위협할 가능성도 문제였다.

비트코인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충분한 검증과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게 행정·입법부의 공통된 견해였다. 가상자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비트코인 ETF 승인을 미루는 SEC를 향해 볼멘소리가 나왔다.

하반기 겐슬러 SEC 위원장, 비트코인 ETF 가능성 언급

올 하반기 들어 분위기는 바뀌었다. 겐슬러 SEC 위원장이 투자자 보호 조건을 내건 데 이어 근거법률을 언급하면서다. 겐슬러 위원장은 지난 8월 열린 애스펀 안보포럼 강연에서 비트코인 ETF가 SEC의 엄격한 규정과 다른 연방 증권법을 준수한다면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CME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선물에 대한 ETF에 한정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나아가 지난 9월 북미 자산 미래 컨퍼런스에서 1940년 투자회사법을 언급하면서 처음으로 법안명을 밝혔다. 이를 근거로 투자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시장은 SEC가 비트코인 ETF에 문을 열 것으로 내다봤다. 자산운용사들이 앞다퉈 비트코인 ETF 신청서를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다. 프로셰어즈도 지난 8월 선물기반 비트코인 ETF와 이더리움 ETF를 연달아 제출했다.

이달 초 겐슬러 위원장은 처음으로 승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달 초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겐슬러 위원장은 "비트코인을 금지할 생각이 없고, 비트코인 ETF를 해당부서가 검토하고 있다"며 "검토가 끝나는 대로 승인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융혁신 방향 가늠"

비트코인이 제도권에 진입하며 글로벌 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가상자산 정책에 대한 미국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는 "비트코인의 가치 논란은 여전하지만 시가총액 규모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 되고 있다"며 "만약 비트코인 선물 ETF 상장 승인에 이어 실물 ETF 상장까지 승인될 경우 글로벌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인 이정엽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는 "선물기반 비트코인 ETF라 파괴력이 크지 않지만 미국의 금융혁신 방향을 알 수 있다"며 "속도만 조절할 뿐 가상자산을 수용하겠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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