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를 이끌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교체된다. 그룹 핵심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될 배터리 사업에 총수의 ‘복심(腹心)’이 CEO로 투입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11월 권영수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이 LG에너지솔루션 CEO로 취임한 데 이어, 삼성SDI도 7일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으로 내정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인 SK온 대표로 복귀가 유력하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CEO 부회장 /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CEO 부회장 /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부회장은 2012년부터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을 맡은지 6년 만에 다시 LG 배터리 사업 수장으로 복귀했다.

권 부회장이 LG그룹 COO에서 물러나 LG에너지솔루션 구원투수격으로 전격 등판한 것은 그룹 핵심 사업으로 떠오른 배터리에 대한 구광모 회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권부회장은 2018년 6월 구광모 LG 대표이사 중심의 경영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그 해 7월 구 대표를 보좌할 지주회사 COO로 선임됐다. 전자∙화학∙통신 분야의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LG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비/강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구 대표를 보좌해 왔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 GM, 스텔란티스 등 유수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4개의 연이은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공장 설립과 수주물량 200조원 규모를 최고수준의 경쟁력으로 순조롭게 공급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권 부회장은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높고, 고객과 투자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높은 신뢰를 줄 수 있는 경영자다"라며 "선제적 미래 준비를 위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경영자를 선임한다는 구광모 대표의 의지와 믿음이 담긴 인사다"라고 설명했다.

최윤호 삼성SDI 신임 대표 내정자 / 삼성SDI
최윤호 삼성SDI 신임 대표 내정자 / 삼성SDI
삼성SDI는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을 신임 CEO로 내정했다. 기존 CEO인 전영현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하지만 대표이사직을 내려놓는다.

최 사장은 오랜 기간 삼성전자에 몸 담아 국내외 살림을 총괄해온 재무통(通)으로 평가받는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 사장에게 삼성SDI를 맡긴 것은 삼성 미래먹거리 중 하나인 배터리 사업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라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배터리 사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서 올해 처음 SK온에 뒤졌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의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지난해 1~10월 6.7%에서 5.0%로 하락했다. 반면 SK온은 5.7%의 점유율로 삼성SDI를 제치고 5위에 올랐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그동안 해외 생산기지 증설에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삼성SDI가 최 사장 선임을 계기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SDI 관계자는 "재무 전문가이자 글로벌 사업운영 역량을 갖춘 분을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함에 따라 앞으로 삼성SDI의 글로벌 사업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 SK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 SK
SK온은 12월 중순쯤 이사회를 열어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임원으로 선임할 것이 유력하다. 최 수석부회장은 현 지동섭 사장과 함께 SK온 대표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2일 발표된 SK그룹의 계열사별 인사에서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가장 늦게 이사회가 열리는 SK온으로 이동 가능성이 커졌다.

최 수석부회장은 2013년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후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고, 현재 SK E&S의 미등기 임원만 맡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앞서 경영일선에서 활동할 때부터 SK그룹의 전기차배터리 사업을 총괄했다. 형인 최태원 회장에게 정유 사업을 대체할 유망 사업으로 전기차배터리에 공격적 투자를 해야 한다고 권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최 수석부회장이 배터리 사업 발굴에 큰 역할을 했고, 공격적 투자에 능한 만큼 SK온으로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