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제친 K게임, 혁신없이 안주하다 모바일서 중국에 밀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신년 인터뷰

"PC 온라인 게임은 대한민국이 세계 원탑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 정도까지 딱 10년 세계 최고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이에요.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은 중국이 더 잘 만듭니다."

한국게임학회장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임국정 기자
한국게임학회장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임국정 기자
2022년 1월 3일 서울 중앙대에서 만난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한국 게임 산업의 현주소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이렇게 답했다. 직설적인 발언이다.

위 교수가 꼽은 중국이 한국을 역전한 계기는 ‘모바일’이다. 한국 게임 업계가 성공에 취한 사이 중국은 한국을 배우며 성장을 거듭했다. 중국의 무서운 상승세를 알아챈 위 교수가 거듭 경고를 날렸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중국 게임사의 관심사는 더 이상 한국이 아닌, 중국 내 게임사로 변했다고 위 교수는 말했다. 2012년 정도가 되자 한국과 중국의 개발력이 비슷해졌고,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모바일 게임에서는 오히려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것이 위 교수의 평가다.

위 교수는 이 밖에도 한국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문제, 한국 게임 산업의 보수화 등을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게임 산업이 자정 의지도, 혁신 의지도 없다고 꼬집었다. 연이어 냉정한 평가다. 하지만 그의 모든 발언에는 한국 게임을 향한 진심스러운 걱정이 묻어 있었다.

한국, 일본과 미국의 벽을 넘다

‘한국게임학회장’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강해서일까. 위정현 교수를 만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경영학부 교수님이셨어요?"다. 게임학회장이니 당연히 공학 교수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위 교수는 연구실에 직접 찾아와서도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주 있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위 교수가 다소 독특해 보일 수 있는 이력을 가지게 된 그 시작은 1990년대 후반이다. 도쿄대학 대학원 경제학연구과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위 교수가 한국에 산업 조사를 나왔을 때다. 당시 한국은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이 한참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였다.

"게임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강한 나라는 일본과 미국이었어요. 일본은 콘솔, 미국은 PC 게임.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명함도 못 내밀었어요. 심지어 우리나라 콘솔 개발사는 소니나 닌텐도가 안 만나줬어요. 그런 수모를 당하고 있었죠."

그런데 당시 한국이 일본과 미국이라는 공고한 양강 체제에 금을 내고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답은 온라인이었다.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이뤄진 온라인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 한국과 달리, 일본과 미국은 클라이언트에만 해당하는 콘솔과 PC 게임을 고집하고 있었다.

일본과 미국이 온라인 게임을 외면한 이유는 ‘떨어지는 게임성’ 때문이었다. 온라인 게임은 떨어지는 게임성을 커뮤니티로 보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시 위 교수가 만난 일본 개발자들은 온라인 게임을 게임으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MMORPG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울티마 온라인’을 만들어낸 미국도 서버와 클라이언트 구조의 온라인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일본을 엎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2004년 정도에 미국에 조사를 가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저도 연구에 있어서는 일종의 베팅을 한 거예요. 이게 가능하다고 보면서 상당히 매력적인 산업이구나 생각한 거죠." 그렇게 위 교수는 게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00년대에 온라인 게임을 앞세워 세계 게임 산업을 선도하던 한국은 현재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해 있다. 위 교수는 "일본이 보여줬던 보수성을 PC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 기업이 똑같이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당시 애니팡 등 수일 만에 만든 게임이 수천억원을 벌어들였지만, 한국 게임 업계는 ‘그런 건 게임이 아니다’고 부정했다고 위 교수는 설명했다. 반면 중국 회사들은 모바일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급속한 전환을 시도했다.

"이제 모바일 게임에서 한국은 여러 강국 중 하나예요. PC 온라인 게임도 이제는 거의 평준화된 겁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게임 관계국 중에서 여러 나라 중 하나라는 거예요. 자본력이라든지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중국이 훨씬 강해진 거죠."

위 교수는 현재 한국의 게임 산업 매출액을 20조원 정도로 평가하며, 방심 없이 제대로 갔으면 200조원 정도는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텐센트의 게임 산업 매출만 해도 2020년 기준 27조원 정도로 한국 전체 매출을 상회하는데, 그런 텐센트를 한국 게임(‘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이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한국 게임사는 해당 게임의 로열티로 1조원가량을 받지만, 이를 기반으로 중국은 더욱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게임학회장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임국정 기자
한국게임학회장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임국정 기자
확률형 아이템에 안주…보수화하는 한국 게임 산업

위정현 교수는 한국 게임사들이 굴지의 글로벌 게임사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이유에 대해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각 게임사 창업자들은 조 단위의 거대한 부를 축적했음에도 혁신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위 교수는 지속되는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도 유저들이 항의를 하기 전 게임사들이 먼저 인정하고 환불 조치를 하는 일이 없다며 "자정 능력 의지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단적인 예로 든 것이 ‘컴플리트 가챠’를 여전히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컴플리트 가챠는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은 결과를 모으면 또 다른 아이템을 주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컴플리트 가차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 게임에서 자주 논란이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은 매출 극대화를 위해 더욱 극단으로 치달아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4월 1일 넥슨, 넷마블게임즈, 넥스트플로어 등 3개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획득 확률 및 획득 기간과 관련된 정보를 허위로 표시하는 거짓·과장·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정 명령과 함께 과태료 2550만원, 과징금 9억84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럼에도 2021년에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가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지속되자 현재 각 게임사들은 자율형 규제 방식으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위 교수는 말한다. 그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게임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0년 말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법 전면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획득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위반할 경우 영업정지, 등록취소 등의 조치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자율적으로 공개 중인 정보가) 정확하면 왜 공개를 꺼리겠어요. 그분들(한국 게임사들) 말씀대로 정확하게 정보를 기재하고 있으면 어차피 이 법안이 무력화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겁네요. 그들이 꺼리는 것은 처벌 규정이 있기 때문이죠. 징역 2년 이하 그다음에 과징금 2000만원 이하예요. 근데 재밌는 게요, 식품위생법상 허위 정보 기재에 대한 처벌보다 훨씬 약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표시·광고,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인·혼동시킬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등을 하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위 교수는 코인 기반의 게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있는데 속은 확률형 아이템과 연동돼서 움직이는 코인이다"며 확률형 아이템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을 봐왔듯 이러한 코인 기반의 게임이 향할 목적지도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을 포함한 메이저 게임사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망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중소 개발사들이 못 견뎌가지고 게임물관리위원회를 무력화하고, 그게 규제 샌드박스 등등으로 들어가면 그다음에 자기들이 들어가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위 교수는 게임 산업이 보수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지 않고 있고, 기존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시리즈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IP의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인력이 많이 들고, 실패 또한 잦으니 게임사들이 도전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한 PC 온라인 게임에서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국가마다 인기를 얻는 게임이 다른 ‘지역 장벽’이 높아지다 보니 한국 게임사들이 국내에 안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게 다 연결돼 있어요. 국내에 안주한다, IP 우려먹기를 한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간다, 코인 기반으로 가려고 노력한다. 이 네 개가 다 연결돼 세트로 움직이잖아요. 이걸 제가 비판하는 거죠. ‘열심히 게임이나 잘 만들어달라’라고요."

"게임법 전면 개정안 통과에 힘쓸 것…메타버스라는 안개 걷어내야"

지난해 한국게임학회장 3연임에 성공한 위정현 교수는 2021년 12월 29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 게임메타버스특보단 단장에도 임명됐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그는 가장 먼저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게임법 전면 개정안을 통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본격적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며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내 판호 발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판호는 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을 말한다. 한국 게임의 경우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이후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 기조가 이어지면서 2020년 12월까지 약 4년간 판호를 발급받지 못했다. 2020년 12월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가 외산 게임에 발급하는 ‘외자 판호’를 받아내며 빗장이 풀리는 듯했으나, 이후에도 소수의 작품만이 판호 발급에 성공하는 등 발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위 교수는 "판호 발급 이슈는 문재인 정부에서 지리멸렬했다"며 "중국에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에 판호 발급에 대한 적극적 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메타버스에 대해서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이다"고 진단했다. ‘세컨드 라이프’라는 사례가 남긴 실패의 교훈이 있음에도 여기에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미국 개발사가 2003년 발표한 온라인 가상현실 플랫폼이다. 그는 당시에도 정부 차원에서 가상 정부에 대한 기획이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당국자들은 10여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연구가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메타버스’만 들어가면 주가가 폭등하는 현재의 주식 시장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위 교수는 게임메타버스특보단 단장으로서 "메타버스에 대한 정책적 난맥상을 정리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위 교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기술을 메타버스라며 새로운 것처럼 얘기해서 돈을 끌어모으는 행위를 말하며 "일종의 사기로 본다"고도 말했다. 그는 "메타버스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기술이라든지 콘텐츠를 가지고 분야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거론한 대표적 예가 디지털 휴먼이다. 이미 한국이 산업적으로 잘 할 수 있고, 콘텐츠 산업의 확장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평가했다.

위 교수는 마찬가지로 게임사들도 게임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메타버스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게임 내에서 AI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라든지, 디지털 휴먼과 같은 오프라인 상에서 활동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온라인과 연동할 것인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엔터테인먼트나 케이팝(K-POP) 등이 결국에는 게임하고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위 교수는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까지도 게임 산업과 관련해 아직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게임 매출이 엄청나게 늘었거든요. 저는 그때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가 원하지 않은 변수에 의해서 돈을 번 것은 우연입니다. 이 돈 가지고 게임 좀 개발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게임 개발합시다. 많이 해주세요."

임국정 기자 summe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