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조(兆) 단위 기업공개(IPO)로 기대를 모았던 SK쉴더스가 상장철회를 결정했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부진으로 결국 공모가를 확정짓지 못했다.

SK쉴더스의 경우, 공모 초기부터 일었던 고평가 논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회사가 정한 공모가 밴드는 3만1000~3만8800원. 이를 바탕으로 한 시가총액은 2조8000억~3조5000억원이다. 기존 보안 대장주인 에스원의 시총을 넘어선다. 아쉽게도 시장 환경도 따라주지 못했다. 코스피는 10일 2600선이 붕괴, 17개월 만에 최저를 찍었다.

논란의 핵심은 비교기업과 몸값 측정 과정이었다. 주관사단은 몸값 산정 과정에서 사업 부문별 매출 비중 가중치를 주고 EV/EBITDA를 활용해 멀티플을 산출한 독특한 방식을 고안해냈다. 현재 매출 대부분이 물리 보안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인 사이버 보안의 성장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과정에서 안랩이 비교기업으로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랩의 최근 주가 상승이 본업인 사이버 보안 성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정치테마주로 묶인 영향인 만큼, 적절한 비교기업 선정이 아니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SK쉴더스 수요예측 참패에는 회사 못지 않게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모건스탠리인터내셔날증권,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가방법을 통한 산출한 비교기업 멀티플에 기반하지만 결국 발행사와 주관사 간의 논의를 통해 희망 공모가 밴드를 정하기 때문이다. 고평가 논란에 대해,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 고위 관계자는 "몸값 산정은 적절한 과정으로 이뤄졌고 고의로 몸값을 부풀리기 위한 행위는 없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NH투자증권이 SK그룹의 눈치를 본 것이 과도한 몸값으로 이어졌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SK그룹이 원하는 몸값을 정해두고 이를 맞추기 위해 주관사단이 아이디어를 낸 것 아니겠냐는 관측이다. NH투자증권이 SK그룹 계열사의 IPO를 꾸준히 맡아온 데다 앞으로 있을 딜을 따내기 위해 고객의 입맛에 맞춰 밴드를 설정했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은 SK 계열사 IPO 대부분을 담당해 왔다. 공모주 열풍을 일으킨 SK바이오팜의 대표주관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쉴더스, 원스토어의 대표주관사에 이름을 올렸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는 인수단으로 참여했다.

최근 새로운 딜도 따냈다. 지난달 SK에코플랜트는 NH투자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3곳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SK에코플랜트 역시 기업가치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딜이다. NH투자증권 입장에서 SK는 어떻게든 잘 모셔야 하는 고객임에 틀림없다.

익명을 요구한 시장 관계자는 "증권사의 IPO 업무를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IB들이 미래의 딜을 따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다수의 기업을 상장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그룹사와 좋은 관계를 맺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면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들이 원하는 기업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SK쉴더스는 IPO 철회신고서를 제출하면서도 향후 재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35일 룰’에 따라 1분기 실적이 발표돼야 증권신고서를 다시 낼 수 있어 빨라야 6월에 공모 재도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상장주관사는 NH투자증권, 모건스탠리, 크레디트스위스로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그때는 과연 시장이 수긍하는 가격을 써내게 될까 한 번 지켜볼 일이다.

김민아 기자 j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