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최근 규제 샌드박스에 따라 모바일 고지서 발송 서비스와 5G 드론 등 사업을 승인했다. 사람이 직접 물건을 전하던 아날로그 우편 세상이 소프트웨어와 기계 중심의 디지털 우편 세상으로 빠르게 전환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서비스에 한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혹은 유예해 주는 제도다.

우편물 유통 구조 변화는 과기정통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의 수익에 직격탄을 안겨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ICT 기술과 우편 시스템을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 도입에 속도를 내지만, 우편 사업으로 연간 2000억원대 적자를 보는 우본 입장에서는 고민이 크다. 자칫 구조조정 등 인력 감축을 통한 조직 재편까지 고심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우체국 드론배송 시범운영 모습.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체국 드론배송 시범운영 모습. / 우정사업본부 제공
과기정통부는 1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공인전자문서 유통중계자로 지정한 KT와 카카오페이가 모바일고지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임시허가를 내줬다. 12일 발표한 5G플러스 전략을 통해 5G 드론을 개발해 우편서비스를 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들 서비스의 공통점은 전통적인 집배원의 업무를 기술 기반 솔루션이 대체한다는 데 있다.

◇ 아날로그의 위기…우편사업 적자 확대

정부기관인 우본은 1884년 우편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전국 3500개쯤의 우체국망을 통해 국민이 언제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우편과 예금, 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농어촌이나 섬지역 주민도 도시와 같은 우편 및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전국 시군 단위 도시지역(46.1%)과 읍면 지역(53.9%)에 골고루 우체국을 설치했다.

하지만 모바일 고지서 제도가 활성화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전국 규모의 우편 사업을 담당하는 우정사업본부다. 안 그래도 해마다 우편 물량이 줄며 적자폭이 커지는데, 모바일 고지서 활성화에 따른 수익 악화는 치명적일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본의 연간 예산은 자체 수입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지출하는 특별회계를 따른다. 중앙 부처와 달리 국민이 내는 세금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 운영되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우본에 따르면, 우편 사업은 2018년 1450원의 손실을 냈다. 2017년 539억원보다 적자 폭이 더욱 늘었다. 2019년에는 적자폭이 2000억원대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등 적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본은 수익성 악화에 따른 돌파구로 5월 우편요금을 50원 인상하기로 했지만, 이역시 임시방편 조치로 풀이된다.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전자고지서 제도가 활성화되면 우편물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우본이 모바일 고지서 사업자로 선정됐다면 모를까, 민간 기업이 우본의 우편 사업 상당 부분을 가져갈 예정이다.

전자고지서 활성화와 우편물 규모는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2003년 국세 인터넷 전자고지가 시작됐는데, 우정사업본부의 국내 우편물량은 2002년 55억통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1년(43억통)부터 계속 감소세를 보인다. 2018년에는 36억통을 기록했다.

선거공보물을 배달 중인 집배원. / 조선일보 DB
선거공보물을 배달 중인 집배원. / 조선일보 DB
5G 기반 드론 우편배송 역시 우본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5G 플러스 전략을 보면, 우편배송을 위한 5G 드론 개발은 2021년까지 완료되며, 이후 대규모 상용화에 돌입한다.

중앙 부처의 정책 집행에 따라 우본이 타격을 입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다양한 상황이 있었지만 2018년 알뜰폰 판매국 확대 추진 역시 비슷한 경우다. 우체국의 알뜰폰 판매는 수익성보다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원하는 국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함인데, 무조건적인 우체국 판매처 확대는 우본의 노력 봉사만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정노조 한 관계자는 "모바일 고지서 도입 시 특정 기업의 이익은 창출되지만 우정사업이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우본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공공서비스인 우편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정부가 정책을 만든 후 우본에 수용하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또 "섬·도서 지역에서 드론을 활용한다고 하지만, 현재 집배원들이 하고 있는 노인돌보기 등 대국민 서비스는 대체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이는 국민 복지에 역행하는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우본 내부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시행 직후 우편사업이 바로 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기 탈출을 위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우정사업본부 한 관계자는 "모바일 고지서 사업은 문자(KT), 카카오톡(카카오페이) 등 인프라가 없는 우본 입장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며 "전자고지서 활성화되면 타격이 있겠지만, 아직 손실을 추산할 만한 산출 근거가 부족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있을지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드론 배송의 경우 현재 테스트베드 구축 단계로, 집집마다 배송하는 시스템이 언제 나올지는 예상이 어렵다"며 "드론 배송에 따른 인력 감축 등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