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 중단 최대 1조3363억원 전망
사상 첫 환매중단 사태에 금융권 초긴장
환매 문의 쏟아져…상품 판 증권·은행에 불똥
사태 파악과 수습책 골몰하면서도 밖으론 ‘쉬쉬’
사모펀드 시장 전반 불신 고조…금융대란 뇌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라임펀드를 판 투자증권사와 은행으로 불똥이 튀어 사태가 되레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는 잇따른 사모펀드 운용 실패와 시장 신뢰도 하락으로 투자자가 줄줄이 자금을 빼가는 ‘펀드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사모펀드 시장에서 비롯한 불신이 금융 시장 전반으로 확산해 자칫 엉뚱한 금융 대란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와 위기감이 고조됐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업계 1위인 라임자산운용은 지난 10월 14일 투자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IFC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까지 누적으로 총 8466억원의 환매가 중단됐다"며 "향후 상환금 지급이 연기될 수도 있는 펀드 56개(4897억원)까지 합치면 총 환매 연기 금액은 최대 1조3363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10월 초 지급이 중단된 금액은 200억원이었는데 불과 열흘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라임 환매 중단 사태…이유는

문제가 된 펀드는 사모채권(37개, 3839억원)과 메자닌(18개, 2191억원), 무역금융(38개, 2436억원) 등 3가지다.

업계는 사태의 시작을 메자닌 투자라고 분석한다. 메자닌은 이탈리아어로 1층과 2층 사이 라운지 공간을 뜻한다. 자본시장에서는 주식과 채권 중간에 있는 상품을 일컫는다. 라임자산운용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했다.

그런데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이미 주식으로 전환한 CB손실이 커졌다. 또 아직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은 CB는 만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결국 환매가 중단됐다.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복잡한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모자(母子)펀드로 구성된 구조가 대표적이다.

메자닌은 만기가 통상 3년인데 조기상환 가능 시점이 1년에서 1년6개월 정도다.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라임자산운용은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메자닌에 직접 투자하는 모(母)펀드를 만들었다. 또 모펀드에 투자하는 자(子)펀드도 만들었다. 모펀드는 메자닌에 직접 투자해 유동성은 떨어지지만 모펀드 수익률을 나누는 방식이다. 자펀드를 활용하면 중도환매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상품을 언제든 환매 가능한 개방형 펀드로 팔 수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모자펀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중도환매가 어려운 상품을 중도환매가 자유로운 상품으로 둔갑시켰다"며 "양립하기 어려운 조합을 마치 그럴듯하게 꾸며 투자자를 헷갈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라임자산운용이 유동화가 어려운 자산들로 중도 환매 가능한 개방형 펀드를 구성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비판이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오른쪽)와 이종필 부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에 후속대책을 밝히고 있다. / 조선DB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오른쪽)와 이종필 부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에 후속대책을 밝히고 있다. / 조선DB
"터질 게 터졌다"…좀비기업 투자에 이상한 펀드 구성까지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싸고 불거진 의혹도 시장 신뢰를 떨어뜨린다.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상장사인 지투하이소닉 거래 정지 전 내부 정보를 이용해 CB를 장외기업에 넘겼고, 수십 개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를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좀비기업이 발행한 자산에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투자 대상 중 배임·횡령 문제로 물의를 빚은 업체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은 이에 대해 "2005년부터 현재까지 CB와 BW 발행 기업의 부도율은 약 7%다"라며 "CB나 BW의 경우 우량 기업에만 투자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금융권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실제 라임투자증권이 투자를 감행한 일부 코스닥사는 당장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실적 부실 기업"라며 "빠른 성장을 위해 준법감시 기능과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부실채권을 편입하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점쳐진 회사만 골라 투자를 감행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모 펀드에 수 백 개의 자 펀드가 파생된 구조도 보기 드물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동성이 끊기는 것을 예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유동성이 풍부하니 환금성이 적은 자산에 투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가 막상 유동성이 끊기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횡령·배임 의혹까지…모럴해저드에 신뢰 추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라임자산운용 경영진의 배임·횡령 혐의가 터지면서 모럴해저드 비난을 면치 못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라임자산운용 고위 임원 A씨를 횡령 및 배임 행위를 저지른 정황을 포착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또 올해 8월부터 라임자산운용에 대해 고강도 검사를 진행했다.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싸고 불거진 수익률 돌려막기·전환사채 편법거래 등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한편 라임자산운용은 배임·횡령 등 혐의로 검찰 수사 의뢰가 들어간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 문제다"라며 말을 아꼈다. 라임자산운용 관계자는 "회사에서 확인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불똥 튄 투자증권과 은행, 대책 마련 부심

라임 펀드를 판 투자증권과 은행들도 갑작스러운 판매중단 사태에 비상이 걸렸다. 1조원 넘게 판 대신증권과 우리은행은 물론이고 신한금융투자, KB증권, 교보증권, 신한은행, 한국투자증권, 하나은행, NH투자증권, 신영증권, 삼성증권 등 1000억원 넘게 판 투자증권사와 은행이 수두룩하다. 파생결합증권(DLS)에 라임 펀드 사태까지 연타로 얻어맞은 우리은행은 충격에 휩싸였다.

금융사들은 환매 중단 이후 연일 대책회의를 하며 사태 파악과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고객의 클레임 대응 방안뿐만 아니라 향후 고위험 상품 판매 전략 수정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일부 금융사는 상품 판매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없었는지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라임자산운용 펀드 역시 파생결합증권(DLS)처럼 고객에게 상품의 원금 손실 위험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를 강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커지자 금융사의 고위험 상품 판매가 당분간 크게 위축할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16일부터 고위험 상품 판매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금융업계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사태가 이 정도로 봉합되지 않는 상황이다. 상품을 산 고객들의 집단 반발이 발생하거나 또다른 부실과 모럴 해저드가 드러날 경우 그간 떨어진 시장 신뢰까지 겹쳐 금융업계 전반을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증권사와 은행은 쉬쉬한다. 갑작스러운 사태 전개 발생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도 덩달아 커지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