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송산업 정책이 실패했지만 새로운 시장 변화에 대비해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새로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자의 등장과 기업간 인수합병(M&A), 5세대(5G) 통신이 돌파구로 꼽힌다.

천혜선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장은 7일 서울 마포구 마포가든호텔에서 열린 ‘2020년 방송통신 시장 전망 콘퍼런스'에서 "지난 5년 간 정부의 유료방송 시장 파이 나누기 정책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라고 말했다.

천 센터장은 국내 방송시장의 수익구조가 건전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수신료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고, 홈쇼핑 송출수수료의 의존도가 높다"며 "사업적 혁신으로 수익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채널 전송 서비스에 의존해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천혜선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장./ 류은주 기자
천혜선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장./ 류은주 기자
인터넷의 발달로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 대응 방안과 산업 성장을 위한 청사진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천 센터장은 "OTT처럼 인터넷 기반 서비스는 각 나라마다 다른 규제를 적용하기 쉽지 않아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 협력,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내수 시장끼리 파이를 나눠먹기보다는 포괄적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콘텐츠 부문에 지속해서 투자해야 하며, 공정한 수익배분과 상생적 관계구축이 필요하다"며 "또 정부가 이전까지는 사업자들의 경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제는 분쟁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G로 기회 만들어야"

정부뿐만 아니라 사업자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곽동균 정보통신정책 연구원은 "한국의 케이블TV 사업이 다른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위축되는데 이는 제도의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사업자의 혁신 부족 탓도 있다"며 "미디어 사업자들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교정하고, 과거에 만들어졌는데 관행처럼 유지되는 정책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규제는 ‘무엇을 하라'는 것에서 벗어나 ‘무엇만 하지 말라'는 형태로 변해야 하며, ‘무엇을 하라'는 규제는 공영방송에만 요구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5G 시대에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은 "5G가 해답은 아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케이블TV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5G 비즈니스 모델을 얘기할 때 B2B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많지만, B2C 비즈니스 모델은 부족하다"며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을 얘기할 때 기술개발 차원으로만 접근하는데, 일반적인 이용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OTT 진흥법 제정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권 센터장은 "2018년부터 언급했지만 OTT는 규제할 대상이 아닌 진흥할 대상이기 때문에, 별도의 진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류은주 기자
./ 류은주 기자
유료방송 M&A 이후 시장 전망을 두고서는 패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M&A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통신기업에 인수되지 않은 케이블TV 사업자가 인수된 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을 사업자들보다 경쟁에 불리할 수도 있다. 업계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의견도 있지만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는 말처럼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M&A가 일어나더라도 지금과 같은 시장 상황이 유지된다면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개선될 가능성은 적다"며 "유료방송 사업자가 콘텐츠 재판매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돼야한다"고 제언했다.

천혜선 센터장은 "5G 서비스가 된다 해도 결과적으로 통신은 유선망 의존이 높기 때문에 유료방송사업자의 성장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며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M&A 이후에도 케이블TV 업계의 미래는 부정적이지 만은 않다"라고 말했다.

2020년 방송통신 시장 관전포인트 ‘OTT·M&A·5G’

이날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에 거론된 2020년 방송시장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세 가지다. OTT, M&A, 5G가 그 주인공이다.

최양수 연세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국내 OTT와의 콘텐츠 중복이 없기 때문에 이용자가 늘고 있다"며 "애플TV+, 디즈니+ 등이 한국에 진출하더라도 한국의 콘텐츠와 내용상 중복이 없다면 경쟁관계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동균 연구원도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며 "해외 OTT가 국내에 진출하더라도 1~2년 사이 시장이 어지럽혀지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권오상 센터장은 "OTT시장이 커지더라도 케이블TV는 허가사업이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며 "하지만, KT가 시내전화 사업을 유지하는 것처럼 의미 없는 생존일 수 있으므로, 다른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종관 전문위원은 M&A가 2020년 더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20년도 M&A로 시끄러울 것 같다"며 "콘텐츠 사업자들끼리 작가, 연출 등의 제작요소 시장 확보하기 위해 제작사 M&A 시도가 늘어날 것이다"며 "콘텐츠 플랫폼 M&A도 늘어나 유료방송 3단계 구조개편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5G 관련해서도 2021년 대규모 주파수 재할당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2020년에 계획을 다 마련해야 한다"며 "주파수 문제와 함께 상호접속이슈도 크게 떠오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