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의 한국 게임 규제와 정부 무능 소환한 '지스타2019'

입력 2019.11.16 07:51 | 수정 2019.11.18 11:51

넥슨,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게임즈 등 한국 대형·중견 업체가 다수 불참했기 때문일까. 부산에서 열리는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19’에서는 중국 기업의 활약이 유독 두드러졌다.

B2C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국 게임업체 미호요 전시장을 만난다. 개발 버전인 오픈월드 게임 ‘원신’ 체험은 물론 코스프레 행사까지 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마찬가지로 중화권 게임사 X.D.글로벌이나 아이지지닷컴도 마찬가지로 대형 전시장을 마련하고 신작과 볼거리를 선보였다. 심지어 행사 메인 스폰서이자 핀란드 기업 ‘슈퍼셀’도 중국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 거대기업 텐센트가 이 회사 지분의 84%를 가졌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중국 게임의 기세가 무섭다. 매출 순위 상위권에서 중국 게임을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스타 현장만 봐도 중국 회사 이름만 가리면 이 게임이 일본 게임인지, 북미·유럽 게임인지 모를 정도로 스타일도 다양하다.

질 측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많은 방문객이 줄을 서고 환호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업계에는 개발력과 게임성 측면에서 중국이 한국을 일부 추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 게임이 질적으로 정체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게임사가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자극을 받기도 한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지스타 현장을 방문해 "앞으로는 이전 주요 전략이었던 게임 개발 속도·장르 선점보다 ‘웰메이드 게임’을 제작하려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펄어비스, 그라비티 등도 한국 시장의 모바일 MMORPG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김진환 그라비티 이사는 "최근 중국이 단기 수익을 노리고 모바일게임을 빠르게 쏟아내므로 한국 기업이 우수한 PC·콘솔 게임을 만든 뒤 모바일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중국 게임이 밀고 들어온다고 무조건 비판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이용자 선택의 폭은 넓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 내놓은 게임 중 어떤 것을 즐길지 결정하는 것은 이용자다. 국적을 떠나 이용자 수요를 만족시키는 게임이 경쟁에서 성공한다.

문제는 이 경쟁이 중국 시장에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과 한국 게임이 한국 시장에서만 ‘박 터지게’ 경쟁한다. 중국은 한국 게임을 자국 시장에 들이지 않으려고 철저히 막았다. 아무리 열심히 개발해 봐야 중국 시장은 ‘그림의 떡’이다.

중국 정부는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허가증) 발급을 2017년 3월부터 막았다. 이후 한 건도 허용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외자판호를 다시 발급했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한국 게임은 목록에 없었다. 시장이 열리지 않는 탓에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누가 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판호 발급 제한 탓에 중국 시장 공략을 목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던 다수 개발사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게임을 다 개발해놓고도 시장 진입이 안되니 발만 동동 구른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시장 문을 두드렸다.

이것도 벌써 한참 전 이야기다. 최근에는 "중국이 시장을 개방할 것이라고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며 ‘해탈’의 경지에 오른 업계 관계자도 적지 않다.

‘지스타 2019’에 참여한 중국 기업 ‘미호요’ 전시장 옆면의 모습, 전시장 사방을 둘러쌀 정도로 많은 방문객이 캐릭터 상품 구매와 게임 시연, 행사 참여를 위해 줄을 섰다. / 오시영 기자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 정부는 도대체 뭘 했나. 한국 화장품, 패션은 물론 K팝 등 콘텐츠 분야에서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서서히 풀리는 분위기인데도 유독 게임과 관련한 소식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에 정부, 특히 외교부의 무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위정현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은 "게임 산업이 정부 보호를 받지 못해 중국 현지에서 고통받는다고 수차례 알렸으나 외교부는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며 "문체부도 남의 나라에까지 한국 정부가 나서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고 말했다.

게임 산업은 해마다 성장해 2018년 수출액 64억달러(7조4800억원)를 기록했고, 무역수지 흑자 중 8.8%를 차지하는 고성장 수출 산업이다. 이낙연 총리는 최근 "게임 산업 규모는 K팝, K드라마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전체 콘텐츠 수출액 절반을 넘는 수치이므로 게임은 당당한 한류 브랜드다"라고 말했다.

이토록 중요하다는 게임 산업이 세계 1, 2위 규모를 다투는 중국 시장에 전혀 진입하지 못한다. 벌써 3년째다. 아직도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문제의 심각함을 몰랐다면 무능함을, 알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비판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의 게임 한류 선언은 공허하기만 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최근 정치권·정부 일각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논의를 조금이나마 진행하는 분위기가 됐다는 것이다.

15일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에 따르면 지스타에 방문한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게임업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중국 판호 발급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주기도 했다. 장 대표는 "구체적인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업계 대표들 사이에 ‘내년 사업계획을 바꿔야겠다’는 농담도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조경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판호를 내주지 않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며 10월 25일과 11월 5일 두 차례 중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한국 게임 개발자와 업체들은 국내 각종 규제에도 꿋꿋이 잘 자랐다.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세계가 인정하는 성과를 냈다.

앞으로는 쉽지 않다. 거대 자본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와 곳곳에서 경쟁해야 한다. 중국 시장 공략은커녕 한국 시장 지키는 것도 위협을 받게 됐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사드배치를 빌미로 한국 게임에 벽을 쌓은 중국 정부처럼 똑같이 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중국 게임에 규제를 가한다면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업체에 시장을 막아버린 중국 정부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중국 판호문제에 대처가 늦은만큼 정부는 하루빨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이 문제는 그간 사드 핑계만 대면 우리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넘어갔다.

이제 안 된다. 문제 발생한지 2년 반이 지났다. 더욱이 사드 결정을 한 박근혜정부와 뭐든지 정반대 방향인 문재인정부의 집권기와 일치한다. 게임판호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뭘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질 수 밖에 없다. 일본 소재부품 수출 제한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발빠른 대응과 비교해 중국 판호 대응은 이런 ‘만만디’도 없다.

중국 게임이 한국 이용자에게도 차별없이 소개되듯이 한국 게임도 중국 시장에서 마음껏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모든 게임의 규칙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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