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암호화폐·블록체인 산업계는 다사다난했다.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ICO(암호화폐공개)가 성행하던 2018년과 달리 올해는 점차 규제 울타리가 마련되면서 산업 체계화가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글로벌 IT 기업은 자체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블록체인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IT조선은 올 한해 발생한 여러 사건 가운데 의미 있는 블록체인 뉴스 10가지를 추렸다.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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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블록체인 품은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갤럭시S10에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사실상 암호화폐 지갑으로, 블록체인 모바일 서비스들의 프라이빗키를 보관하는 기능)’를 탑재하면서 블록체인 사업 소식을 알렸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가 블록체인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한 건 삼성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디앱(DApp·탈중앙화 앱) 생태계 꾸리기에 집중하는 등 모바일 중심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에 나서는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는 크립토키티와 코스미, 엔진, 코인덕 등 네 개 디앱을 선보인 데 이어 다양한 분야의 앱을 추가했다.

삼성전자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월 삼성전자는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와 함께 한정판 블록체인 스마트폰 ‘클레이튼폰’을 출시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카카오 암호화폐 클레이(KLAY)와 일부 암호화폐를 지원하는 암호화폐 지갑을 탑재했다.

10월에는 개발자를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인 ‘삼성 블록체인 플랫폼 SDK’을 공개했다. 개발자은 해당 SDK를 활용해 디앱을 간편하게 개발할 수 있다.

② JP모건 자체 암호화폐 개발

올해 2월 JP모건은 미국 은행 중 최초로 자체 암호화폐 시범운영에 나섰다. 이는 세계 은행권에 큰 이정표가 됐다. 은행이 직접 코인을 발행해 블록체인 기술만 육성하기 보다는 기관 투자자용 인프라를 구축하고 미래 금융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지 CNBC 등에 따르면 JP모건 코인명은 JPM코인이다. 미국 달러와 1대 1 교환 가치를 지닌 기관 투자자용 스테이블 코인이다.

JPM코인은 기업과 은행, 기관 투자자 등 대규모 거래 고객 간 거래 지불 수단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A라는 고객이 JP모건 계정에 돈을 입금하면 그 고객에게는 JPM코인이 발행된다. A 고객은 향후 이 코인을 B고객 계좌로 이체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국경 간 송금도 신속하게 이뤄진다.

블룸버그재팬 등 일부 외신에 따르면 JP모건은 JPM코인 관련 테스트를 올해 말쯤 시작한다. 우마르 파르쿠 JP코건 블록체인 부문 총괄은 "기업 간 결제 및 채권 거래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JPM코인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③ 글로벌 SNS 기업 토큰 개발에 강경대응 나선 세계 규제당국

올해 페이스북과 텔레그램 등 글로벌 SNS 기업은 자체 암호화폐 관련 소식을 알렸다.

페이스북은 6월 자체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 백서를 공개했다. 리브라는 세계 어디서나 송금 및 결제를 할 수 있는 글로벌 화폐를 표방한다. 가격 변동성이 심한 일부 암호화폐와 달리 각국 법정화폐와 연동돼 가격이 고정된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스위스 소재 비영리 조직인 ‘리브라 어소시에이션’ 관리 아래 운영된다. 주요 의사 결정 등은 글로벌 기업체로 이뤄진 100개 노드를 기반으로 한다. 백서 공개 초반 페이스북이 공개한 노드 운영사에는 마스터카드와 페이팔, 이베이,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기업이 포함됐다.

페이스북의 야무진 꿈은 세계 규제당국에 의해 잠시 중단됐다. 리브라가 유통될 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초래할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전과가 있는 기업이 금융을 포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대항마로 꼽힌 텔레그램도 자체 토큰 유통에 나섰다가 현재는 잠정 중단한 상태다. 텔레그램은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톤(TON)으로 자체 암호화폐 그램(GRAM)을 발행할 계획이었다. 텔레그램은 중재자 없이 당사자 간 송금·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당초 텔레그램은 10월 31일 해당 프로젝트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규제당국의 ‘임시 중단’ 조치에 잠정 중단했다. 규제당국은 텔레그램이 그램 토큰 사전 판매와 자체 진행한 ICO 등을 통해 17억달러(약 2조391억원)를 조달한 것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신고 없이 자금을 조달한 것이 법을 위반한 사례라고 본 것이다.

④ 세계 각국은 CBDC 연구중

글로벌 SNS 기업의 자체 암호화폐 개발 소식은 세계 각국 정부에도 경종을 울렸다. 결국 각 국가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대응을 위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연구에 나섰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가 CBDC 발행에 신중히 접근한다. 한국은행은 향후 지급결제 시스템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CBDC를 여러 옵션 중 하나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발행 계획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최근 "리스크를 관리할 충분한 프레임워크가 없는 상태에서 코인을 발행하면 안 된다"며 "대규모 고객을 가진 기업이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면 금융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CBDC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연구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과 중국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은 CBDC 개발 및 시범운영에 서두르는 모습이다. 이들 중 CBDC 발행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일각에선 페이스북 리브라 등장 이후 자국 금융시스템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이 CBDC 시장서 우위를 점해 글로벌 화폐 패권을 중국으로 돌릴 계획이라고 보고 있다.

⑤ 산업 제도화 물꼬 튼 FATF 암호화폐 권고안

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올해 6월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과 이를 취급하는 거래소 등 서비스제공자에게 적용할 규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암호화폐와 거래소 규제에 대한 세계 첫 표준이 생긴 셈이다. 이로써 FATF 가입국은 FATF 실사에 앞서 권고안을 위한 기본 법률 및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권고안의 골자는 가상자산(Virtual Asset)과 가상자산서비스제공자(VASP)를 정의하고 이들이 따라야할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규제(CFT)에 필요한 인허가, 등록, 감시 및 관리 체제 등이다.

권고안은 ▲거래소 회원들에 대한 사전조사와 ▲적어도 5년 이상의 거래 기록 보관 ▲의심스러운 거래 발생시 보고 체계 ▲국제적인 제재를 이행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및 국제 협력 등을 요구한다.

아울러 거래소 간 암호화폐 이동에 있어 거래 상대방, 공개키, 주소, 관련 계좌, 거래 일시, 거래량 등의 정보를 확보하도록 권고했다. FATF는 암호화폐를 보내는 회원의 이름, 계좌번호, 주소, 생년월일과 받는 회원의 이름, 계좌번호 등도 거래소가 확보해야 할 정보로 예시한다.

⑥ 백트 비트코인 상품 출시

올해 9월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회사인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의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 백트(Bakkt)가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하면서 세계 암호화폐 시장은 급등락을 반복했다. 백트가 기관 투자자 유입을 도울 것이라는 업계 기대감 때문이다.

백트의 비트코인 선물은 최종결제일에 거래소가 지정한 창고를 통해 매도자와 매수자가 실물을 인수하는 방식인 ‘실물인수도’ 방식으로 이뤄진다. 계약을 정산할 때 비트코인을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백트는 비트코인 선물 상품 뿐 아니라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백트는 2020년 상반기 일반 매장에서 소비자가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소비자 전용 앱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⑦ 부산 블록체인 특구 지정

한국 정부가 올해 7월 부산을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하면서 위축됐던 국내 블록체인 산업이 요동쳤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토큰 이코노미 모델이 활성화된 사례가 없는 만큼, 토큰 이코노미를 통한 부산 지역경제 활성화가 이뤄질 지 관심이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 사업에는 관광과 안전, 물류, 금융 등 총 네 개 분야에 부산은행 등 7개 사업자가 참여한다. 문현혁신지구와 센텀혁신지구, 동삼혁신지구 등 11개 지역이 특구로 지정됐다. 부산시는 2019년부터 2년간 299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부산에서는 영상으로 사건 현장을 제보하면 그 보상으로 지역화폐(디지털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무엇을 사고 먹었는지 등 소비패턴 정보를 제공해도 같은 보상을 받는다.

⑧ 채굴기 제조사의 메이저 증시 상장

해외 증시 입성과 관련해 탈락의 고배를 수 차례 마셔온 중국 비트코인 채굴기 제조사 ‘카난크리에이티브’가 최근 나스닥에 상장됐다. 채굴기 제조사 중 메이저 주식 시장에 입성한 것ㅅ은 카난크리에이티브가 처음이다.

지난 11월 21일(현지시각) 나스닥에 따르면 카난크리에이티브는 나스닥에서 1000만주의 주식예탁증서(ADS)를 발행했다. 주당 가격은 9달러다. 총 모집 자금은 9000만달러(약1057억원)이다. 모인 자금은 주로 연산 솔루션과 고성능 칩 설계, 인공지능(AI) 관련 상품 출시, AI 서비스형소프트웨어, 해외 사업 개척 등에 사용된다.

카난크리에이티브는 나스닥에서 CAN이라는 티커로 거래된다. 이번 주식 판매에는 씨티그룹과 중국 투자은행 차이나르네상스, CMB 인터내셔널 캐피탈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⑨ 악재 겹친 업비트

거래소 해킹 사태는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고 있다. 가장 최근 국내 암호화폐 산업에 충격을 안긴 곳은 업비트다. 업비트에서는 11월 27일 오후 34만2000개(약 586억원) 이더리움이 출금되는 이상 거래가 발생했다. 이에 업비트는 긴급 서버 점검 공지를 내고 암호화폐 입출금을 일시 중단했다.

이석우 업비트 대표는 이날 저녁 "약 580억원에 달하는 34만2000개 이더리움이 알 수 없는 지갑으로 전송됐다"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업비트는 해당 거래를 확인한 즉시 회원 자산을 지키기 위해 서비스 입출금을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더리움 거래와 관련해 해킹을 인정한 셈이다.

악재는 여기서 끊이지 않는다. 검찰은 최근 가짜 회원 계정(아이디8)을 만들어 거액의 자산을 예치한 것처럼 꾸미고 거짓 거래로 1000억원대를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업비트 운영자들에 대해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지능적 방법으로 고객 다수를 기만했다"며 "자전거래로 고객 선택권을 보장한 게 아니라 피고인 이익을 취했다"고 밝혔다. 이어 "업비트가 대량 주문을 냈을 때 마침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했다"며 "피고인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암호화폐 산업 제도화 움직임 물씬

최근 국내에선 암호화폐 산업 제도화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그간 보류됐던 특금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최소한의 법적 울타리가 세워질 것으로 내다본다.

특금법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줄임말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정책권고 이행 근거를 담았다. 관련업계는 FATF가 회원국을 상대로 2020년 6월 입법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만큼, 그에 앞서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논의에서 여야는 의견을 조율해 개정안 일부 조건을 완화했다. 김병욱 의원이 발의해 특금법 개정안에 명시했던 ‘가상자산 취급업소’라는 용어가 ‘가상자산 사업자’로 바뀌는 등 신고제 일부 조건이 완화됐다. 또 정보보호인증체계(ISMS) 직권말소는 6개월 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해당 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국회 본회의를 모두 통과할 시 입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