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활성화와 정부 의지에 달렸다”

입력 2020.01.22 06:00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인터뷰
디지털 기술+의료 성장세…바뀌는 의료 패러다임
걸음마 떼려는 韓, 정부·업계 호흡이 관건

미국의 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 업체는 2006년 아이디어에 불과하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였다. 소비자가 타액 샘플을 보내면 DNA를 분석하고 질병 발병 위험과 유전되는 질환 변이 등 정보를 소비자에게 이메일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당시 이 업체는 각종 규제에 부딪혔다. 의료계 이해 관계자들은 경계했다. 자칫 이 서비스로 인해 자신들의 진료 행위나 이권 등에 걸림돌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서비스 운영에 난항을 겪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3년 이 회사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최종 판매 불허했다.

10여년이 지난 2017년, 이 업체는 상황이 바꼈다. FDA는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등 10가지 질환을 대상으로 이 업체의 개인용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허가했다.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바로 받아볼 수 있도록 승인한 최초 사례다.

세계 개인 유전자 분석서비스 1위를 달리는 유니콘 기업 23앤미(23andMe) 이야기다. 23앤미는 약 10여년을 각종 규제와 의료계 이해 관계자 등과 싸우면서 유전자 검사 서비스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병원에서 수 백만원을 들여 유전자 검사를 받는 대신, 199달러(약 23만원)만 내고 집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취약한 질병과 맞는 운동, 식이요법 등을 알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보건의료와 ICT 기술 융합으로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뿐 아니라 일반인 건강 관리 등에 활용된다. 신약 개발이 어려운 뇌신경계와 신경정신과 질환, 약물 중독 등 분야에서도 효용성을 보인다. 기술 활용으로 비용 절감 효과 등을 볼 수 있어 세계 제약사 러브콜을 받는다.

국내서도 디지털 기술과 의료를 접목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점차 성장세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는 이유다. 다만 여기에는 규제 이슈 등 수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제대로 된 엑셀러레이터(초기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엔젤투자와 사업공간, 멘토링 등 종합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창업기획자)가 필요하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 DHP 제공
IT조선이 20일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 최윤섭 대표를 만난 이유다. 2016년 설립된 DHP는 국내서 유일하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만 대상으로 액셀러레이팅을 하고 있다.

이 회사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3년간 14개에 이른다. 유전체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수 천가지 희귀 질환을 진단하는 스타트업 ‘3빌리언’ 발굴을 시작으로 VR(가상현실) 기반 수술 시뮬레이터 개발사 ‘써지컬마인드’, 블록체인 기반 의료 데이터 플랫폼 개발사 ‘휴먼스케이프’, 탈모 전문 모바일 플랫폼 개발사 ‘삼손컴퍼니’, 명상 앱 ‘마보’, 반려동물 돌봄이 서비스 ‘펫트너’ 등이다.

생태계 구축이 핵심…"정부·업계 함께 노력해야"

DHP는 혁신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해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이 목표다. 최윤섭 대표는 국내 생태계만 잘 구축하면 의학·사회적 가치 창출이 훨씬 수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위해 스타트업 생태계와 정부가 함께 발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좋은 예는 미국이다. 미국은 디지털 헬스케어 벤처 투자가 해마다 기록을 갱신한다. 실리콘밸리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투자사 록헬스가 쓴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1억달러(약 1조2754억원)에 불과하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투자금은 2018년 81억달러(약 9조3919억원)로 치솟았다. 실제 2017년 기준 록헬스 투자 프로그램에 지원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800개다. 그 중 록헬스는 1%인 8개 업체에 투자를 집행했다.

최 대표는 "정부 의지와 업계 간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의료 비용과 접근성 등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미국 정부와 업계가 함께 발 맞춰 미국 의료 시스템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이는 유니콘 순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세계 유니콘 디지털헬스 스타트업 38곳 중 한국 스타트업은 없다. 아직 관련 스타트업 수가 적고, 한국의 특수한 의료 시스템과 저수가, 규제 등이 요인이다.

KPMG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0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63개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면 규제 때문에 사업이 아예 불가능(31개)하거나, 사업에 상당한 제약(32개)을 받는다고 답했다.

만약 23앤미 유전정보 분석 서비스가 한국에서 이뤄지면 이는 불법에 해당한다. 우버로 환자를 이동하는 것도 차량 공유 서비스와 환자 유인행위 등으로 불법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더라도 규제 문제 상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헬스케어 분야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수도 저조한 이유로 분석된다. 최 대표에 따르면 2019년 DHP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지원한 스타트업 수는 50개다. 그 중 DHP는 6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최 대표는 "국내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수가 아직 부족하다"면서도 "다행스러운 점은 2018년부터 국내에 점점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비하면 역부족이지만, 스타트업 창업자 역량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규제·지불구조시스템·인력·정부 의지 등이 해결 과제

한국은 어떻게 해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최 대표는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이해 ▲글로벌 동조화 ▲규제 개선 ▲지불 구조 시스템(의료보험제도 등) 개선 ▲식약처와 심평원 내 전문인력 확충 ▲정부의 지지 ▲정부 내 다부처 협의체 등 조직 구성 ▲스타트업 수 증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자생 환경 조성 등 문제점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꼽았다.

그는 특히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이해관계 간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고, 이런 협의를 끌어낼 수 있는건 정부 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규제는 지속 개선돼야 한다"며 "기술 발전과 산업 현장 니즈를 기민하게 반영해 규제를 개선하면 혁신을 장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규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 결과로 환자에게 기술 발전 수혜를 적시에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지만, 이들이 전면 규제 개혁을 진행하는 이유와 배경, 논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전적으로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부족한 것도 개선돼야 할 과제다. 양적인 스타트업 확대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 그는 "혁신을 위해선 양적인 개선으로 질(quality)적 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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