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가 데스크톱 PC에 이어 노트북 시장에서 ‘라이젠’ 열풍을 이어간다. 7나노미터(㎚, 10억분의1m) 공정으로 성능·전력효율 등이 더욱 향상된 ‘르누아르(Renoir)’ 기반 3세대 라이젠 모바일 4000시리즈 프로세서를 앞세운 AMD는 올해 노트북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20% 돌파에 도전한다.
하지만 노트북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전 중이다. 데스크톱 시장에서는 CPU에 내장한 코어 수로 인텔을 압도했지만, 노트북 분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제품 특성상 저전력과 발열 관리 등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나마 2019년 내놓은 ‘피카소’ 기반 2세대 라이젠 모바일 3000시리즈 프로세서 덕에 12% 수준이었던 노트북 시장 점유율을 16%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AMD는 최근 ‘라이젠 모바일 4000시리즈’ 프로세서와 이를 탑재한 3세대 라이젠 노트북을 통해 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신제품은 7㎚ 공정으로 만든 멀티코어 제품인 만큼 전력 효율이 개선됐다. 일반적으로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의 숫자가 낮아질수록 전력 효율이 향상된다.
AMD 제품을 탑재한 노트북 제조사들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만 해도 시중에 판매되던 라이젠 노트북 수는 양손을 꼽을 정도에 적었고, 고급형 제품보다 ‘가격’으로 승부하는 중저가 ‘가성비’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제조사가 저가는 물론 고가 라이젠 노트북을 선보이는 중이다.
고사양·고성능 노트북의 꽃인 ‘게이밍 노트북’ 시장에서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르누아르 기반 라이젠 모바일 4000시리즈 모바일 프로세서는 최대 8코어 16스레드의 CPU 구성을 자랑한다. 최근 출시되는 라이젠 게이밍 노트북의 면면을 보면 최대 4.2㎓의 속도로 작동하는 ‘라이젠 7 4800H’ 또는 4.4㎓의 속도로 작동하는 ‘라이젠 9 4900H’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그래픽카드 역시 중상급 게이밍 노트북이 탑재하는 지포스 RTX 2060까지 지원한다. ‘배틀그라운드’, ‘배틀필드’ 등 고사양을 요구하는 최신 온라인 게임까지 즐길 수 있는 중상급 사양이다. 경쟁사 CPU를 탑재한 게이밍 노트북에 비해 사양이나 성능 면에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까지 나왔던 2세대 라이젠 노트북들이 주로 저가 보급형 라인업이 대부분이었던 것과 비하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프리미엄 노트북으로 분류되는 얇고 가벼운 노트북 시장에서도 라이젠 프로세서 탑재 제품의 비중이 늘어날 전망이다. 르누아르 기반 라이젠 모바일 프로세서의 저전력 U 시리즈 제품군은 게이밍 노트북에 탑재되는 고성능 H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최대 8코어 16스레드까지 지원한다.
신형 라이젠 프로세서는 경쟁사의 저전력 프로세서 모델(4코어 8스레드)보다 2배 많은 코어 수를 자랑한다. 덕분에 동영상 편집, 이미지 렌더링 등 멀티코어 성능을 요구하는 전문 작업 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가볍고 휴대가 편한 노트북에서 고성능 작업이 가능한 성능까지 노리는 전문가나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르누아르 기반 라이젠 노트북이 장밋빛 전망만 받는 것은 아니다. 부가가치가 큰 최상급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에서의 위상이 경쟁사에 한참 못 미치는 탓이다. 다양한 제조사가 라이젠 노트북의 종류를 크게 늘린 것은 맞지만, 각 제조사별 대표 플래그십 노트북 리스트에는 AMD 노트북이 없다.
게이밍 노트북의 경우, 인텔 CPU를 쓴 제품은 지포스 RTX 2070 이상 GPU를 탑재한 하이엔드급 제품이 이미 상당수 있다. 반면, 르누아르 기반 라이젠 게이밍 노트북은 아직 지포스 RTX 2060을 탑재한 제품이 가장 최상급 제품이다.
최상급 게이밍 성능을 내려면 CPU뿐 아니라 GPU의 성능도 중요하다. 일단 새로운 라이젠 노트북에 대한 시장의 반응과 수요를 확인해 보고, 더욱 고사양·고급형 제품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려는 제조사들의 망설임이 엿보인다.
얇고 가벼운 ‘울트라북’ 급 노트북 역시 마찬가지다. 두께 15㎜ 이하, 무게 1㎏ 전후의 프리미엄 초박형·초경량 노트북 시장은 여전히 인텔 천하다.
다만, 이 시장은 게이밍 노트북과 달리 기술력과 자본력의 문제가 더 크다. 인텔은 노트북 판매량이 데스크톱을 넘어선 수년 전부터 상당한 투자를 통해 노트북 제조사들과 긴밀하게 협력 중이다. 성능을 최대한 유지한 채 더욱 얇고 가벼운 노트북 구현을 위해 설계 및 디자인 단계서부터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테나 프로젝트’는 차세대 초박형·초경량 노트북 제조를 위한 인텔과 제조사간 대표적인 협력 사례다.
AMD가 새로 선보인 라이젠 프로세서의 성능이 우수한 것은 맞지만, 인텔과 제조사가 맺은 협력 관계에 단번에 균열을 낼 수는 없다. CPU도 중요하지만, 기업간 신뢰와 꾸준한 협업이 필요하다.
수요가 크면 공급도 따라 증가한다. 최신 라이젠 노트북이 시장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 점유율과 수요가 늘어난다면 제조사 입장에서도 AMD 노트북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할 일이 없다. 단기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긴 관점에서 AMD와 제조사 간 관계가 정립돼야 한다.
AMD의 노트북 시장 점유율은 과거 한창 전성기를 달렸던 시절에도 10%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르누아르 기반 3세대 라이젠 노트북을 탑재한 제품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할 때, 사상 최초로 20%대의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