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블록체인 사업 구현 속속
대출·디지털 신원증명(DID)·수탁 서비스·CBDC까지
가상자산, 제도권 들어오면 금융 서비스 풍성 전망

금융권이 블록체인 사업 구현에 시동을 걸었다. 디지털 금융 전환을 이끌 주요 기술로 블록체인이 떠오르면서다. 지난해 기술 연구에만 머물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각종 은행 서비스 적용을 시작으로 향후 결제·송금과 같은 디지털 자산 영역까지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이 블록체인 기반 금융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대출 자격검증부터 인증, 디지털 신원증명(DID)에 이어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 연구,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영역까지 진출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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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대출 자격검증에 CBDC까지

주요 은행 중 블록체인 금융 구현에 가장 적극인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한국은행에서 진행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중앙은행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새로운 화폐) 파일럿 테스트 대비 차원에서 LG CNS와 손잡고 기술 검증에 나섰다. 한국은행과 기존 은행이 CBDC 운영과 관련해 역할을 배분하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미리 시나리오를 짜고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윤하리 신한은행 블록체인랩장은 "LG CNS와 기술 검증(PoC) 단계를 밟고 있다"며 "CBDC 발행 시나리오 별로 주요 기능을 검증하고, 금융기관과 고객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이밖에도 국내 최초로 기존 대출 자격검증 업무에 블록체인을 도입해 주목 받았다. 신한은행이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 자격검증 시스템’은 소속 기관과 은행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일종의 암호화된 OTP(One Time Password) 정보를 등록·조회한다. 고객이 소속 기관 자격 인증과 기타 증명 사실을 모바일이나 PC를 통해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윤 랩장은 "지난해 대출 업무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했다"며 "평소 2~3일 걸리던 대출자격 확인 시간을 대폭 줄여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블록체인 기술 적용 이후 대출 건수는 25%, 취급금액은 전년대비 46% 성장했다"고 밝혔다.

NH농협은행 "블록체인+디지털 자산 신규 사업 무궁무진"

지난해 디지털 R&D센터를 신설하고 블록체인 기반 신규 서비스 개발 기반을 마련한 NH농협은행도 블록체인 실적용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블록체인 증명 서비스와 DID는 기본이고 수탁 서비스와 잔액증명 분야까지 블록체인 기술 적용에 적극이다.

농협이 지난해부터 준비한 대표 블록체인 사업은 ▲농협 디지털 R&D센터 모바일 출입증 PoC ▲공무원협약대출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지원사업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 등이다.

NH농협은행은 ‘P2P 금융증서 블록체인 서비스’를 우선 선보였다. P2P금융 투자자의 원리금 수취권 증서를 ‘NH스마트고지서’로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다. P2P업체가 발행하는 원리금 수취권 조작·변경을 블록체인으로 해결하는 차원에서 고안됐다.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수탁·관리하는 서비스도 준비가 한창이다. 이를 위해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 블록체인 기술사 헥슬란트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향후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면 기관투자자와 가상자산 거래소, 블록체인 사업자를 위한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농협은 비자 발급, 자본금 인증 용도로 은행 창구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잔액증명서를 은행 앱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이용자의 지점 방문과 인증기관 허가, 기관별 종이서류 발급 등 절차를 블록체인으로 간소화하겠다는 복안이다.

KB국민은행, 디지털 자산 發 ‘금융혁명’

KB국민은행의 경우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 보다는 ‘디지털 자산’에 관심을 높인다.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에 이어 실물자산(미술품, 부동산 등)을 디지털화하는 개념의 블록체인 사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국민은행은 특허청에 ‘KBDAC’ 상표를 출원했다. 디지털 자산 수탁·정산 등 디지털 금융 자산관리 브랜드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또 20개 업종을 함께 등록했다. 암호화폐 관련 통화거래업, 금융자산 관리 컨설팅업, 디지털 자산 투자 및 운용업, 디지털 자산의 장외거래 중개업, 블록체인 기술을 기초로 한 디지털 금융자산관리업 등이다.

KB국민은행 측은 당시 "여러 업체와 기술을 연구하는 초기 단계다"라며 "당장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은 이밖에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8월에는 가상자산 투자사 해시드, 블록체인 개발사 해치랩스, 가상자산 장외거래 업체 컴버랜드코리아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은 이들이 함께 디지털 자산 보관·관리, 관련 규제 변화 공동 대응,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신규 사업 발굴, 블록체인 금융 생태계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또 가상자산뿐 아니라 부동산, 미술품, 권리 등 자산도 디지털자산으로 발행 및 거래될 가능성이 농후한만큼, 이에 필요한 기술과 생태계를 확보하겠다는 차원이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블록체인 전문기업 아톰릭스랩과 디지털 자산 보호기술 및 스마트계약 적용 방안 공동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부동산과 미술품, 저작권 등 실물자산을 디지털화해 매매하는 개념의 연구를 위해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은 은행권 비즈니스 가치를 2025년까지 1760억달러(약 196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망이 있다"며 "효율성과 가치를 따질때 주요 은행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에 편입되면 블록체인·디지털 화폐발 금융 생태계가 보다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