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단체와 간호사협회가 ‘간호법’ 제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빗고 있는 가운데 국회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4월에 법안 상정의 향방이 결정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년째 국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사안이지만, 보건복지부가 아직까지 간호법 단일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상태라 언제쯤 국회 논의가 진행될지 여부도 주목된다.

(왼쪽에서 네 번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간호법 철회 촉구 10개 단체 공동 비대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
(왼쪽에서 네 번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간호법 철회 촉구 10개 단체 공동 비대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간호법 관련 심의 등이 4월에 열리는 국회 임시국회에서 추가 논의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의료계 10개 단체 공동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와 대한간호사협회는 서로다른 입장을 내세우며 ‘법안 저지’ 또는 ‘강행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10개 단체 모인 의료계, 간호 단독법 저지에 사활

우선 7일 국회에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10개 단체가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 단체는 최근 간호단독법 문제점 및 대체 방안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각종 시위를 진행하는 등 법안 저지를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4월 임시국회에서 또 다시 간호단독법 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간호단독법의 문제점에 대한 우리의 줄기찬 외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로부터 아직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회장은 "간호계에서는 코로나19로 가장 고생하고 헌신한 직역이 간호사라며, 간호단독법 제정으로 이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법안만으로는 결코 간호사의 처우가 좋아질 수 없다"며 "오히려 현행 의료법 체계보다 간호단독법안의 내용을 우선 적용하도록 하고 있어, 보건의료 정책의 근간이 붕괴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의료계가 간호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보건의료 정책 근간 붕괴 ▲의료의 질 저하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설 ▲간호사 직역에게만 특혜 부여 등이다. 이들은 간호법 제정이 보건의료 정책의 근간을 붕괴시키고, 국민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비대위는 "간호법안 속 ‘간호’ 관련 내용을 학교보건법, 농어촌의료법, 형집행법 이외에는 다른 법률에 우선 적용함으로써 의료법보다 간호법을 우선시한 ‘간호특별법’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간호(조산)정책심의위원회를 신설하도록 해 간호정책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같은 위상의 회의체에서 논의하는 것은 건강보험정책과 간호정책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는 비상식적 입법행위이다"고 지적했다.

간호법으로 인해 간호사 없이 의사 단독 의료행위가 불가능해 진다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간호법은 간호사가 독자적·포괄적으로 진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해, 의사가 수술 또는 처치 중 환자 치료를 위해 시급히 행할 의료행위일지라도 간호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며 "간호조무사가 ‘의사’의 지도가 아닌 ‘간호사’의 지도 하에서만 간호조무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해, 간호사없이는 간호조무사가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간호법이 단독 의료기관 개설 가능성을 열어두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주장한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것에서 의사의 ‘처방’하에 시행하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함하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의사가 개설 할 수 있는 기관 이외에 별도 기관을 세워 간호사가 독자적·포괄적 진료행위를 수행할 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간호요양원이나 가정간호센터 등을 개별 설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뜻이다.

간호협 "이미 1년전 약속된 바, 감염병 위기 속 간호법 필요"

대한간호사협회는 이미 1년 전 국회가 약속한 사항이라며, 간호사 처우 개선과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간호법은 반드시 상정돼야 한다고 맞섰다.

이들은 법안 제정의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민 참여형 릴레이’도 진행 중이다. 국민 참여형 릴레이는 ‘#간호법이 필요해’ 문구가 담긴 챌린지 이미지를 선택해 친구, 가족 등과 사진을 찍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식으로 참여하는 시위다.

 대한간호사협회가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를 진행했다. / 대한간호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가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를 진행했다. / 대한간호사협회
최근 열린 ‘릴레이 챌린지 발대식’에서 신경림 간협 회장은 "간호법은 궁극적으로 국민 생명과 환자 안전을 지키고 새 시대에 부합하는 보건의료 및 간호·돌봄체계를 마련하는 법안이다"며 "변화된 보건의료 환경과 초고령 사회 도래,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신종 감염병 등의 위기에 대처하려면 간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코로나가 3년째 접어들었지만 병원 현장은 지금도 아수라장이고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역시 개선된 게 없다"며 "간호사들의 처우와 숙련된 간호사 확보를 위해서도 간호법은 이번 4월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은 지난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후 여당을 중심으로 강하게 추진해온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민석 복지위 위원장은 올해 2월 차후에 열릴 국회 법안소위에서 간호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다만 3월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당초 강력한 의지를 보인 국회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의료계가 워낙 강력하게 결사반대를 외친 측면도 있지만, 지난해 공통의견을 내세운 국민의힘 측이 점점 간호법 상정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기류를 감지한 간호협회는 간호법에서 의료계와 가장 큰 대척점을 이룬 ‘처방’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법안 상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올해 초 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며, 차기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4월 임시국회 통해 상정 될 수도…지방선거 이후 논의 가능 나와

현재 상황으로는 4월 임시국회를 통해 간호법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2월 법안소위가 이뤄졌으나 마무리 짓지 못해 차후 소위가 열릴 4월에 재논의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 보건복지부가 의료계 내부 단일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여서 관련 법안 상정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4월 셋째주에 간호법안 심의를 마무리하자는 입장이지만, 안건 논의마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국민의힘이 신중론을 꺼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 시기에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대립 논쟁을 강행하기란 부담이 있을 것 같다"면서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있어 국민 보건과 직결된 간호법 상정을 차후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회에서는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까지 문제를 이어갈 것이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국회 내부 관계자는 "민감한 주제라 정확한 답변은 어려우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법안을 정권 교체 시기에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이후 파행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며 "우선 대통령 취임식이 완료된 이후 치뤄지는 지방선거까지 거쳐야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