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 매각한 인텔, 다시 비상할 ‘발판’ 마련했다

최용석 기자
입력 2020.10.20 18:08
20일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가 업계에서 화제다. 키옥시아(전 도시바), 웨스턴디지털에 이어 4위에 머물렀던 SK하이닉스가 단숨에 업계 2위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인수 규모도 90억 달러(10조2555억 원) 수준으로,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 사례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대외적인 관심은 단숨에 낸드 업계 2위로 부상하게 된 SK하이닉스에 쏠리고 있지만, 인텔 역시 이번 낸드 사업부 매각으로 얻는 것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며 유지하기 부담스러웠던 낸드 사업부를 깔끔히 정리하고, 고부가가치의 미래 아이템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낸드 사업부 매각 소문이 돌기 시작했던 19일 인텔의 주가는 전날보다 소폭 오름세를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낸드 사업부 매각을 증시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셈이다.

인텔 본사 전경 / 인텔
인텔 역시 처음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 주력은 메모리 제품이었다. 하지만 현재 인텔의 사업 영역은 CPU를 중심으로 하는 고성능 컴퓨팅을 시작으로 통신 및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비전 컴퓨팅, 자율주행 등 비메모리 반도체 기반 사업이 주력이 된 지 오래다.

인텔이 지금껏 낸드 플래시 사업부를 유지해온 것도 시작이 메모리 반도체였기 때문에 상징적인 차원에서 유지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으면 낸드 시장에서 40%에 육박하는 삼성의 4분의 1에 불과한 9%대 점유율로 하이닉스 다음의 5위에 머물고 있을 이유가 없다. 즉, 인텔은 그동안 족쇄나 다름없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마지막 잔재인 낸드 사업부를 SK하이닉스에 매각하면서 오히려 부담을 덜게 된 셈이다.

인텔은 이번 매각으로 확보하게 된 재원을 앞서 언급한 차세대 고성능 컴퓨팅, 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등의 차세대 주력 사업군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이번 인수는 하이닉스 입장에서 확실히 플러스가 되는 장사다. 비록 낸드 시장에서 인텔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업계 최초로 낸드 기반 SSD를 상용화한 기업인 데다 낸드 관련 지식재산권(IP)과 축적된 노하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인텔은 낸드 업계의 차세대 기대주인 QLC(Quadruple Level Cell) 낸드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업이기도 하다.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분명 상당한 플러스 요소다. 당장 규모 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덩치를 키우고, 인텔이 강점을 가진 엔터프라이즈급 플래시 스토리지 솔루션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SK하이닉스와 인텔 양측 모두 윈-윈인 결과다.

인텔, 현재 주력 사업 재투자 및 새로운 M&A 추진도 나설 수 있어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번 매각-인수는 인텔에 좀 더 남는 장사가 될 전망이다. 사업부 매각으로 확보한 재원을 인텔이 밀고 있는 각종 유망 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인수합병에 보탤 수 있는 군자금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규모 확대 및 새로운 IP 확보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인수합병이 활발하다. 지난 9월 400억달러(당시 기준 47조3500억원)를 투자해 ARM을 인수한 엔비디아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0억 달러(8조5000억원)에 인수한 멜라녹스에 이어, 이번에 ARM까지 인수함으로써 단숨에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공지능·반도체·데이터센터 솔루션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CPU 부문에서 인텔의 경쟁사인 AMD 역시 FPGA(프로그래밍 가능한 반도체) 분야 업계 1위인 자일링스의 인수합병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거래 규모로만 대략 300억 달러(34조5000억원) 수준이다.

이처럼 몸집을 불리는 경쟁사들 사이에서 인텔 역시 경쟁력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유력 기업의 인수합병이란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이미 굵직한 사례로도 2015년 FPGA 부문 2위인 알테라를 인수하고, 2017년 모빌아이를 인수해 비전컴퓨팅 및 자율주행 부문에 진출한 인텔인 만큼, 당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새로운 인수합병 카드를 꺼내는 것도 이상치 않다. 새로운 인수합병에 나선다면, 이번 낸드 사업부 매각은 그 준비과정인 셈이다.

인텔 옵테인 메모리 SSD 제품 / 인텔
게다가, 인텔은 이번 매각에서 진짜 알짜배기인 ‘옵테인(Optane)’ 메모리 부분은 넘기지 않고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옵테인은 낸드 플래시처럼 비휘발성 특성을 가지면서도, D램(DRAM)에 버금가는 매우 빠른 데이터 입출력 성능을 갖춘 차세대 메모리 제품 중 하나다.

전통적인 스토리지-메모리-CPU(또는 GPU)로 구성되는 기존 컴퓨팅 시스템의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 처리 효율을 향상할 수 있어 인텔의 대표적인 차세대 슈퍼컴퓨터 및 데이터센터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랜 세월 이어왔던 낸드 플래시 사업을 과감히 매각할 수 있던 것도, 고부가가치 아이템인 옵테인 메모리 기술이 여전히 자신들의 품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단이다.

반면, 인텔과 SK하이닉스의 이번 거래 성사는 낸드 업계 1위인 삼성전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같은 한국기업이지만 SK하이닉스가 낸드 플래시 부문 단독 2위로 급상승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데다, 인텔의 추후 행보에 따라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부문 업계 1위’라는 목표 달성이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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