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역대 최고가 경신
기업·기관, 가상자산 투자·서비스에 눈독
‘CBDC 열풍’…연구 단계서 개발·적용으로
싹 틔운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韓 비롯 세계 곳곳 가상자산 제도화 속속

올 한해 가상자산·블록체인 산업은 2019년 대비 한층 성장했다. 규제 필요성을 외치던 2019년과 달리 가상자산 생태계가 건강하게 조성될 수 있는 기초 법규가 세계 곳곳에서 마련됐다. 산업이 서서히 체계화되자 글로벌 기업은 다양한 가상자산을 취득하고 관련 서비스를 출시했다. 무엇보다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던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최고가를 잇따라 경신하며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IT조선은 올 한해 발생한 여러 사건 가운데 의미 있는 가상자산·블록체인 뉴스 5가지를 추렸다.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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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최고가 경신한 비트코인

올해 가상자산 업계 화두는 2017년 이후 3년 만에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비트코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비트코인은 사상 첫 3000만원을 돌파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배경으로 각국 중앙은행의 전례 없는 돈 풀기 정책을 꼽는다. 양적 완화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달러화 등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눈독을 들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 미국을 기점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과 기관투자자 유입, 기업의 가상자산 서비스 출시 등도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린 원인으로 지목한다.

② 가상자산 시장에 몰리는 기업·기관

올해 가상자산 시장에는 글로벌 기업과 기관이 대거 유입됐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은 3억5000만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간편결제 사업자 페이팔이다. 페이팔은 자체 서비스에 가상자산 매입 기능을 추가하고 내년부터 2600만개의 온라인 가맹점 내 가상자산 결제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결제 시대의 물꼬를 튼 셈이다.

여기에 기관들의 비트코인 투자는 줄줄이 이어졌다. 3월 월가 짐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회장의 비트코인 투자 사실 선언을 시작으로 나스닥 상장사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미국 전통 생명보험사 ‘매사추세츠뮤추얼생명보험’가 비트코인 투자에 가세했다. 이들이 투자한 규모는 각각 4400억원과 1092억원 규모다.

우리나라에선 기업·기관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KB국민은행이 총대를 멨다. 은행은 국내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기술사 해치랩스와 손잡고 디지털 자산 관리기업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내년부터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와 매입에 이어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세무·회계 처리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③ CBDC, 연구에서 개발·적용으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도 단연 화제다. 지난해 페이스북과 텔레그램의 자체 가상자산 개발 소식에 등 떠 밀리듯 CBDC 연구에 나섰던 세계 중앙은행은 이제 연구 단계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CBDC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은 디지털 위안 활용 범위를 자국뿐 아니라 국경 넘어까지로 확대 중이다. 최근 홍콩의 실질적 중앙은행인 홍콩금융관리국(HKMA)과 디지털 위안 사용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내수 시장 활성화뿐 아니라 국가간 결제까지 선점해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를 이뤄내겠다는 심산이다.

지난해만 해도 CBDC에 신중히 접근했던 한국은행은 내년부터 시험 유통에 나선다. 한국은행이 발행과 환수를 맡고, 유통은 민간이 담당하는 실제 현금 유통 방식의 CBDC 체제가 가동될 전망이다. 여기서 한국은행은 CBDC 시스템의 정상 동작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발행을 확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④ 싹 틔운 탈중앙화 금융

제 2의 ICO(가상화폐공개)라고 불릴 정도로 고속 성장한 ‘탈중앙화 금융(디파이)’도 올 한해 업계 화두다. 디파이는 정부나 기업 등 중앙기관을 끼지 않고도 예금과 대출, 결제, 투자 등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금융 시스템이다.

올 해 디파이 시장은 ‘높은 이자율’로 주목받았다. 가상자산을 예치하면 많게는 연 수백 %의 이율을 얹어주는 상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실제 세계 최대 디파이 정보 사이트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디파이 상품에 예치된 총액은 12월 24일 기준 134억달러(약 14조7000억원)로 집계된다. 이는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호가했던 지난 6월 대비 10배 이상 불어난 수치다.

업계 전문가들은 디파이가 향후 기존 금융이 해결치 못하는 부분을 파고들면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내년 1월 디파이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는 박도현 바이프로스트 대표 겸 가천대 교수는 "디파이를 통해 블록체인이 금융 시장에 가져오는 혁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에서 돌아가면 100년 이상 이어져 온 금융 업계 모럴해저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⑤ 가상자산 제도화 물꼬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 통과정부의 가상자산 과세 계획에 있다. 정부는 제도권 편입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업계는 이 두 움직임을 시작으로 가상자산 생태계가 건강하게 조성될 기초적인 환경이 마련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업계는 특금법 개정안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특금법 개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들에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여하고, 의무를 준수하는 사업자에 한해 신고 후 영업하도록 명문화한다.

임지훈 두나무 전략담당 이사는 최근 개최된 한 행사에서 "가상자산 사업자가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지 명확해졌다"며 "산업을 투명하게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해석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도 "특금법 개정안 통과는 산업이 서서히 법제화되고 있다는 의미다"라며 "시장 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겨나면서 업계 내 사기 행각 등이 걸러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