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말이다. 백성을 위하는 세종대왕의 극진한 마음은 조세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에 잘 나타난다. 세종대왕은 농업 생산성을 높여 백성의 배를 불린 뒤 공평한 과세로 재정을 넉넉히 해 국가의 힘을 키우고 경제를 다스렸다. 세종대왕이 조세의 과학화와 선진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세종대왕의 조세정책이 성공할 수 있던 요인은 ▲농업 교육 ▲공평 과세 ▲민주적 공법 마련 등을 꼽을 수 있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기후와 토지 특성에 맞는 농법을 담은 ‘농사직설’을 펴내 널리 보급해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대치의 농업 생산량을 기록할 수 있었다.

세금 징수 과정은 과학기술을 적용했다. 토지 대장에 빠진 토지를 찾아내는 한편 토지의 비옥도와 풍흉정도에 따라 등급제를 시행해 공평 과세를 실현했다. ‘조세 법률주의’ 뿌리로 여겨지는 조세 공법은 무려 25년에 걸쳐 만들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유생들의 의견을 듣고 백성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시행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애민정신을 근본으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 세종대왕의 조세정책은 후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의 일부 경제 활동을 죄악시하고 징벌적 성격의 세금을 부과하는 현 정부의 조세 제도와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징벌적 과세의 대표적인 대상은 부동산과 가상자산이다. 통상 세금은 나라 살림은 물론 사회 정책적, 경제 정책적 목적으로 이용된다. 특정행위를 유도하거나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보완 대책’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근거로 보면 부동산 과세가 투기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특정행위를 유도하려는 정부의 정서가 ‘집 값 안정’보다는 ‘투기 세력에 대한 반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있다. 과세 징벌 대상은 현행법상 형사처벌이나 이에 준하는 범죄에 국한돼야 한다. 권력 혹은 재력을 가진 자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는 재산을 가진 국민을 대상으로 또 다시 저항 운동을 펼치는 모습이다.

부동산 세금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집 값 폭등의 원인이 정부의 성급한 제도 마련에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잠잠하던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켜 놓고는 그 원인을 부동산을 가진 국민에 따져 물으며 범죄자로 몰아부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정부 정책에서 애민정신은 찾기 어렵다.

규제안 마련 과정에서 국내외 경제 상황과 부작용에 대한 연구·검토는 물론이고 부동산 전문가 의견 청취와 같은 민주적 절차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규제 내용도 수시로 바뀌고 그때마다 부동산은 되레 들썩이며 고공행진을 했다. 민주성과 공평성이 결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음은 가상자산 투자자 차례다. 정부는 가상자산 투자자를 ‘어른의 교육이 필요한’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또 다시 징벌적 과세를 계획하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가 부동산 과세와 다른 점은 시장을 육성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해외 기업을 국내에 유치하는 한편,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해외 투자를 받거나 해외로 진출하도록 육성책을 펴면 그에 따른 과실은 자연스럽게 정부 세수로도 흘러들어간다. 정교하고 강력한 투자자 보호 정책을 바탕으로 충분한 연구를 통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가려냈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부는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모든 가상자산 발행을 불법으로 규정, 유망한 스타트업까지 해외로 내쫓았다. 이들은 스위스나 싱가포르에 둥지를 틀고 그곳에 세금을 내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자금 유입도 차단했다. 그래 놓고 이제와 제대로 된 인프라도 갖추지 않은 채 ‘묻지마’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다보니 국회와 시장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5년 내내 4차산업혁명 추진 사업을 밀어붙이면서도 국익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신기술을 육성해 국민이 부유해지고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힘을 얻으려면 국민이 잘 살길 바라는 애민정신이 깔려 있어야 한다.

투기와 투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투기꾼은 형법으로 철퇴를 가하되,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연구와 교육 그리고 시장 성장을 바탕으로 공평하고 사리에 맞는 조세 정책을 펴야 마땅하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