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시장 사업자 간 경쟁이 심화한다. 자금 여력이 큰 이통3사 자회사와 KB리브엠(KB국민은행의 알뜰폰 브랜드) 등은 대규모 마케팅비와 요금제로 앞다퉈 가입자 쟁탈에 나서는 등 출혈 경쟁 중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 업체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돌파구 마련에 애를 먹는다. 대형 업체의 마케팅 활동이 법적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는 상황인 탓이다.

정부와 협단체 등은 알뜰폰 업계 자율로 출혈 경쟁을 막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상생협의회를 만들어 시장 건전화의 묘수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협의회에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업체는 페널티를 받는 등 제재를 받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11월 개최한 알뜰폰 1000만 가입자 달성 기념식 모습 / IT조선 DB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11월 개최한 알뜰폰 1000만 가입자 달성 기념식 모습 / IT조선 DB
자급제 만나 크기 키우는 알뜰폰 시장…1월 가입자 618만명

2일 알뜰폰 업계에 따르면, 가격 민감도가 큰 알뜰폰 시장이 성장하면서 알뜰폰 사업자별로 경쟁 상황에 대한 입장이 갈린다. 업체 규모에 따른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알뜰폰 시장은 최근 성장 추세다. 자급제(이통사 대신 단말기 제조사, 유통사에서 공기계를 구매해 개통하는 방식) 스마트폰을 구매한 후 가입 제한이나 약정 등 조건 없는 저렴한 요금제에 가입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덕이다. 알뜰폰 사업자는 이동통신사의 통신망을 그대로 사용하는 만큼, 통화 품질은 거의 같다. 대신 한 달에 지불하는 통신비가 절반 수준이다.

이동통신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사이트 조사 자료를 보면, 2021년 하반기 스마트폰을 구매한 소비자 중 자급제 단말을 택한 이는 전체의 35%다. 전년 동기(25%)보다 비중이 늘었다. 자급제 업체가 판매하는 단말기를 선택한 소비자 중 90%는 알뜰폰 요금제를 선택했다. 지난해 77%였던 비중이 23%포인트 증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분석한 1월 기준 알뜰폰 가입자 수는 회선 기준으로 618만192 회선이다. 2021년 1월(608만6434회선)과 비교하면 1.54% 늘었다.

시장 성장세가 분명하다 보니 사업자 간 경쟁도 치열하다. 알뜰폰 시장은 까다로운 가입 조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가 언제든 원하는 알뜰폰 브랜드로 갈아탈 수 있다. 일 예로 소비자가 매달 100원이라도 싸면 값싼 요금제 쪽으로 몰려가는 식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한 알뜰폰 업계는 사용료 할인과 사은품 지급 등을 무기로 마케팅을 펼친다. 매달 고정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적지만, 가입자 확보를 위해 출혈 경쟁까지 벌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업체별 가입자 수는 해당 회사가 돈을 쓴 만큼 늘어나게 돼 있다"며 "사업자별 가입자가 늘고 줄고의 차이는 영업과 마케팅 비용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세대별 알뜰폰 이용자 추이와 가입 요인 그래프 / 컨슈머인사이트
세대별 알뜰폰 이용자 추이와 가입 요인 그래프 / 컨슈머인사이트
자본 규모로 나뉘는 사업자 갈등에 과기부 고민은 현재진행형

알뜰폰 시장에서 더욱 큰 특징인 대형 사업자와 중소 사업자 간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알뜰폰 자회사와 KB국민은행의 알뜰폰인 KB리브엠 등은 회사가 일부 수익을 손해 보더라도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린다. 상당 규모의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크지 않은 중소 사업자는 출혈 경쟁을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대형 사업자가 마케팅 경쟁을 펼치는 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중소 사업자 중심의 문제 제기 후 해법 마련에 나섰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2021년 11월 SK텔레콤 자회사인 SK텔링크, KT 자회사인 KT엠모바일과 KT스카이라이프, LG유플러스 자회사인 LG헬로비전과 미디어로그 등 5개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자 자회사 합계 점유율 제한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이 과정에서 사업자 의견을 청취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발표 후 4개월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기존에 제시했던 알뜰폰 사업자 등록 조건을 변경해 점유율을 제한할 수 있지만, 알뜰폰 사업에 힘을 쏟는 LG유플러스가 과기정통부 제안에 난색을 보이며 답보 상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등록 조건 변경은 사업자 협의가 있어야 하며, 정부가 별도로 데드라인이나 정답을 정해놓고 협의할 수 없다"며 "자칫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통3사 자회사가 알뜰폰 시장 활성화에 기여한 만큼 일방적인 사업 제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중소 알뜰폰 사업자와 상생할 수 있는 협력 사업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알뜰폰 스퀘어 매장 전경 / IT조선 DB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알뜰폰 스퀘어 매장 전경 / IT조선 DB
KB국민은행 지적하는 목소리도 늘었다…협의회가 시장 갈등 해결 묘수될까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브랜드인 KB리브엠을 놓고도 말이 많다. 공격적인 사업 행보를 펼치는 KB리브엠이 망 도매대가(원가) 이하 가격에 쓸 수 있는 요금제를 발표한 탓이다. 출혈 경쟁 유도는 건강한 알뜰폰 시장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2021년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에 이어 올해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KMVNO)도 KB리브엠의 출혈 마케팅에 제동을 걸었다.

KMVNO 측은 "KB국민은행이 판매한 요금 상품은 수익성이 고려되지 않은 원가 이하의 요금제며, 자본력이 부족한 기존 알뜰폰 사업자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며 "전체 알뜰폰 사업자의 출혈 경쟁을 유도하는 만큼 사업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KB리브엠은 2021년 11기가바이트(GB) 데이터를 제공하는 롱텀에볼루션(LTE) 요금제를 판매하면서 프로모션 할인가를 더해 월 1만9800원의 이용료를 제시했다. 이통 3사 알뜰폰 자회사가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3만3000원에 요금제를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손해액이 상당한 셈이다.

비난의 직격탄을 맞은 KB리브엠은 해당 요금제 가격을 2만원대로 조정했지만, KB국민은행이 통신 사업보단 금융 사업을 위해 KB 리브엠 가입자를 늘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KB국민은행은 통신 서비스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특성을 고려한 결과다. 상대적으로 알뜰폰 사업만 하는 중소 경쟁 업체는 손해를 보면서 상품을 팔아야 한다. 물론, KB국민은행의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 출시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규제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이같은 상황에서 KMVNO와 알뜰폰 사업자 등을 포함한 알뜰폰 업계가 참여한 상생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시장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다. 과다 경품을 지급하는 업체를 모니터링 하는 등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두 차례 상생협의회를 진행했다. 10일 세 번째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며 "아직 협의회 운영 초반인 만큼 지금은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모니터링 항목에 어떤 것을 추가할지 논의 중이며, 상반기 페널티 등의 방안을 확정하게 되면 업계 갈등이나 불평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