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 검사업체인 스타트업 A사는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질병 예측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업은 포기했다. 국내서는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분야가 비만과 탈모 등 12개 항목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치매나 암 등 수요가 높은 분야는 정작 유전자 분석이 불가능하다. A사는 암을 비롯해 300여개 이상 항목 검사를 허용하는 일본에 법인을 세웠다.

#스타트업 B사는 한국 규제를 피해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숙박 시설이 부족한 일본은 올림픽을 앞두고 전문 업체 운영을 전제로 숙박 공유업을 허용했다. 우리나라에서 내국인 대상 숙박 공유업은 금지돼 있다.

한국 규제가 신사업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한국 규제는 중국과 이집트보다 뒤쳐졌다는 분석이다. 의료와 바이오, ICT, 금융 등 신사업 분야가 한국을 먹여살릴 새로운 사업 분야로 떠오르지만 기존 사업자들과 마찰, 각종 규제, 복잡한 행정 절차 등 불필요한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2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사업 진입규제는 주요 선진국 대비 매우 높은 편이다. 국제연구기관인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는 한국 진입규제 환경이 조사대상 54개국 중 38위라고 평가했다. 미국(13위)과 일본(21위), 중국(23위)은 물론 이집트(24위)보다도 낮다.


./ 대한상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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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는 의료와 바이오, ICT, 금융 등 신산업 분야 사업에서 경쟁국보다 불리한 이유를 ▲기존 사업계 반발 ▲포지티브 규제 방식 ▲공무원 행정 등을 문제로 짚었다.

특히 의료 및 바이오 산업 규제 장벽이 높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의 국가에서는 원격 의료가 전면 허용된다. 덕분에 중국 텐센트와 바이두 등 중국 ICT 기업은 원격의료를 접목한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인다. 장준환 대한상의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업계 반대 등에 부딪혀 20년 째 시범 사업만 하고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B사는 스마트 체온계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영유아 건강관리 서비스 앱을 개발했다. 이상 체온이나 구토 반응 등 증상을 입력하면 의사가 대처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의사가 스마트폰 앱으로 대처법을 알려주는 건 국내 의료법 위반이어서 국내에선 서비스 할 수 없다.

포지티브 규제도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벽으로 꼽힌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허용되지 않는 항목만 나열한 네거티브 방식 혁신 활동을 보장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해진 것 외에는 모두 할 수 없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다.

./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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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 항목 규제가 대표적이다. DTC는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서비스다. 국내서는 현행법 상 비만과 탈모 등 12개 항목에서만 유전자 검사가 가능했다. 최근 정부가 시행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중증도 질환 등 13개 항목이 추가로 허용됐지만, 업계서는 이 또한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국과 중국은 DTC 검사 항목을 따로 제한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검사 항목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도심형 숙박공유업과 핀테크 분야도 포지티브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국내 한 핀테크 스타트업은 인공지능(AI) 기반 새로운 펀드상품을 개발했지만 법으로 정해진 펀드만 판매할 수 있어 해당 상품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모델도 한국에선 적용이 어렵다. 현재로서는 외국인만 이용 가능하고, 내국인은 이용할 수 없다.

소극적인 행정 처리도 규제 장벽을 강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에너지업체 B사는 2016년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을 위해서는 지자체에 관련 업종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결국 일부 사업만 가능한 ‘반쪽짜리 허가'였다. 지자체서는 지역 민원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지자체 업무 담당자도 매년 바뀌는 바람에 사업은 시작도 못하는 상황이다.

장준환 연구원은 "해외 공무원은 규제 완화를 돈 안 드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고 보지만 우리나라는 규제 강화를 가장 돈 안 드는 확실한 대책이라고 본다"며 "기업의 새로운 시도가 각종 행정 편의주의, 규제 의존증 등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꼬집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적극 행정이 제도화됐지만 문제발생 이후 소명과 면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공무원들이 문제되는 규제를 스스로 발견해 없앨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