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각(대표 김재연)은 온라인으로 초신선 식품을 파는 업체다. 초신선 식품은 오늘 낳은 달걀과 짠 우유, 도축한 지 나흘이 지나지 않은 고기 등을 일컫는다. 기존 유통체계로는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했다. 정육각이 스마트 팩토리에 접목한 소프트웨어(SW) 기술로 이를 가능케 했다. 이 회사는 축산업체인가, SW업체인가.

◇ 정육각, "SW업체다"
정육각은 언뜻보면 축산식품을 파는 회사다. 실제로는 기술 개발 회사다. 이 회사 사업에서 기술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사업자 등록도 ‘SW 개발 및 공급업’으로 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온디맨드 JIT(Just In Time)시스템’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 시스템은 소비자가 주문하는 즉시 그 정보를 식품 공장으로 보낸다. 공장은 받은 정보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제품 작업순서와 작업량 등을 계산한다. 2시간 내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에게 배송한다. 초신선 식품을 빨리 받을 수 있으니 소비자 반응이 좋다. 정육각은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6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김재연 대표는 "올해 서울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서울 전역에서 주문 1시간 내 배송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사업 확장을 위해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한다. 기술 인력 확충도 절실하다. 정규직이든 인턴인든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개발해야 하는 기술직이다. 인턴은 곤란하다. 정규직이 답인데 대기업 선호 경향 탓에 원하는 개발자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정육각은 그래서 병역특례제도의 문을 두드렸다. 이른바 산업기능요원이다. SW개발회사이니 당연히 신청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앞에서 퇴짜를 맞았다.


./ 정육각 홈페이지 갈무리
./ 정육각 홈페이지 갈무리
◇ 병무청, "축산업체다"
병무청 시각으로는 정육각은 병역 특례가 가능한 IT분야가 아니라 축산업에 속한다. 정육각 매출에 SW나 관련 서비스 매출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기능요원 병역특례업체 지정을 받으려면 제조업이나 정보처리(IT), 에너지업, 광업 등 분야에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IT 분야 병역특례업체가 되려면 ▲SW 개발 ▲게임 SW 개발 ▲애니메이션 제작 등이 주된 사업분야이어야 한다. 해당 사업에서 발생하는 매출액도 전체 매출액의 30% 이상이어야 한다.

정육각은 SW를 개발하지만 이를 팔지 않는다. 당연히 SW 판매나 플랫폼 이용 수수료와 같은 매출이 없다. 병무청 관점으로 정육각은 SW기업이 아니라 축산업체다.

병무청 측은 정육각이 병역특례 인력을 필요로 한다면 현 매출 구조로 가능한 축산업 인력을 신청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현행 IT분야 병역특례는 소프트웨어와 게임, 애니메이션 등 순수 IT분야 업체 수요를 충족하면서 해당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한 제도"라며 "현실적으로 IT가 필요하지 않은 업종은 없으며, 특정 업체만을 위해 이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육각은) IT분야에서 주 매출이 나지 않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 뿐이며 농수산 및 축산 분야 병역특례 인력 신청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융합시대에 맞는 제도 개선 논의 시작할 때
정육각의 주장도, 병무청의 답변도 다 일리가 있다. 특정업체만을 위한 제도 개선은 부적절하다는 병무청 설명도 충분히 이해된다.

다만 앞으로 정육각과 같은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산업이 융합형으로 가면서 기존 제도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산업 업종 분류부터 병역특례 신청 요건까지 현실에 맞게 개선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중소기업 인력 확충은 병역특례제 취지이기도 하다. 병역 자원 일부를 중소기업에 근무하도록 해 국가산업 육성 및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정작 정육각과 같은 기술 융합형 스타트업에 병역특례 제도 자체가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김재연 대표는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여러 기술을 접목한 융합형 산업이 등장하지만, 우리같은 업체들은 기존 규제로 인해 계속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