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65] 'AI 화가' 만든 스타트업이 '넥스트 어도비' 지향하는 까닭

입력 2019.09.28 10:00 | 수정 2019.09.28 10:02

[인터뷰] 박지은 펄스나인 대표 "그래픽 AI 기술 도입으로 문화 발전 이끌 것"

2016년 예술계에 화제를 모은 사건이 있다. ‘조영남 대작(代作) 의혹 사건’이다. 가수 겸 화가였던 조영남 씨가 대작 화가 송모 씨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자신의 이름으로 팔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영남 씨는 2018년 8월 2심에서 원심의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미술 작품은 조 씨의 고유한 아이디어"라며 해당 그림이 대작이 아님을 밝혔다. 그림은 송모 씨가 그렸지만 창작 원천 아이디어는 조 씨가 냈기에 그의 작품이 맞다는 논지다.

왜 2심 재판부는 1심을 비롯해 미술계와 대중 다수의 부정적인 시선과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일까? 일각에서는 세계 미술계의 ‘개념 미술’ 보편화를 배경으로 짚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가가 직접 붓을 잡아야만 작가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반면 국제 미술계에는 조영남 씨가 시도한 방식의 개념 미술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을 도입해 개념 미술의 장을 열고 침체한 한국 미술 시장에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스타트업이 나왔다. ‘펄스나인(Pulse9)’이다. 그림 그리는 AI를 개발해 인간 화가의 작품 생산을 돕고 웹툰 등 다양한 이미지 시장에 AI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26일에는 극사실주의 화가인 두민과 AI 화가가 협업한 독도 그림도 선보였다.

색다른 도전을 아끼지 않는 펄스나인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IT조선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펄스나인 사무실을 찾아 박지은 대표를 만났다.

박지은 대표. / 펄스나인 제공
한국 미술 시장의 가치 확장할 ‘AI 화가’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데미안 허스트와 조영남 씨의 작품 생산 방식은 유사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허스트는 대작 작가를 뒀다고 밝혔지만 조 씨는 그렇지 않은 점입니다."

박지은 대표는 두 작가의 차이점을 예로 들며 한국 미술 시장이 폐쇄적이고 후퇴해 있음을 지적했다. 데미안 허스트는 개념 미술의 대표 인물이다. 그는 작품을 생산할 때 개념적인 부분을 기획·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림은 대작 작가가 그린다.

우리에게는 허스트의 작품 생산 방식이 낯설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사정은 달라진다. 그의 작품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끈다.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화가가 붓을 들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다"면서 "(예술 가치를 한정 짓는 한) 한국 미술 시장은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미술 시장은 해외에서 주목받은 그림을 수입하거나 평가를 받아야만 작품 가치를 인정한다. 작품의 가치 판단을 폭넓게 두지 않는다. 신진 아티스트 불모지일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예술 가치가 추구되기에 젊은 아티스트의 실험 작품이 쏟아진다. AI 화가가 그린 작품도 그중 하나다. 2018년 세계 3대 경매사인 크리스티가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경매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43만2500달러(5억1791만원)에 팔렸다. 유럽에서도 AI가 그린 그림이 한 점당 2~3000만원에 거래됐다. 우리나라의 대표 극사실주의 화가인 두민의 작품이 500~1000만원 선인 것과 다르다.

이 모든 배경이 AI 화가와 두민 작가의 협업 프로젝트 이유가 됐다. 펄스나인은 AI와 두민 작가가 협업한 독도 그림을 26일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기업 아트투게더에 선보이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펀딩 기부금은 독도 관계 단체에 기부한다.

김 대표는 "한국 미술 시장은 사실상 시장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생태계가 깨져 있다"면서 "현시대에 무엇이 미술이고 예술인지 그 가치를 논하는 미술사적인 질문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계가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도록 돕고 변화를 이끌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두민 작가와 AI 작가가 협력해 완성한 독도 그림. 두민 작가가 수면 위 독도를 서양화 기법으로 그렸다면 AI는 수면에 비치는 독도를 동양화 기법으로 그렸다. / 펄스나인 제공
AI가 예술가 작품관 확대에도 도움 준다

독도 그림 프로젝트에서 두민 작가는 기획을 맡았다. 펄스나인이 개발한 AI 화가 ‘이메진(Imagine)AI’에 특정 독도 사진을 줘 수면에 비친 독도 그림을 동양화 기법으로 그리게 했다. 두민 작가는 이메진 AI가 그려낸 독도 그림 위에 있는 지상 독도 그림을 서양화 기법으로 그렸다. 이후 원근감을 비롯한 마무리 보완 작업을 더해 그림을 완성해냈다.

이메진AI가 동양화로 그림을 그린 까닭은 두민 작가가 서양화를 주로 그리기 때문이다. 인간 화가가 갖추지 못한 부분을 AI 화가가 보완한 식이다. 이번 작품이 교감한다는 의미의 ‘코뮌 위드(Commune with…)’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박지은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AI와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면서 "AI 작가와 예술가는 경쟁 대상이 아닌 상생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예술가가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작품관을 확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뮤즈(Muse)’가 있었다"면서 "이제는 AI가 뮤즈를 대체해 예술가에게 기술적인 부분이나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화가, 3분 만에 초상화 완성 가능

펄스나인은 2017년 7월에 설립한 신생 스타트업이다. ‘스타일 트랜스퍼(Style Transfer)’ 분야를 기초로 자체 그래픽 AI 기술을 도입해 AI 화가 이메진AI와 ‘페인틀리(Paintly)’를 만들어냈다. 알고리즘이 입력된 이미지를 인식하면 AI가 이미지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뽑아내 새로운 사진이나 그림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이메진AI는 연구에 목적을 두고 개발 중인 AI 기술이다. 펄스나인의 기술력을 알리는 데 이용될 예정이다. 상업용이 아니기에 기술을 판다든지 이 기술을 이용해 특정 기업과 협업하지 않는다. 대신 두민 화가와의 독도 그림 프로젝트처럼 다른 예술가와의 협업을 진행할 수 있다. 펄스나인 자체 프로젝트도 가능하다.

페인틀리는 상업용 AI 기술이다. 이메진AI 기술 일부를 제한해 가볍게 라이트(light)용으로 만들었다. 사진을 입력하면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낸다. 3분이면 완성된 작품을 볼 수 있다.

페인틀리 기술로 그려낸 초상화. 인물부터 동물까지 다양하다. / 김평화 기자
펄스나인은 7월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피플게이트와 협업해 페인틀리 기술로 가수 박봄과 김태우 등의 연예인 초상화를 제작했다. 앞서 2월에는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생동감 있게 복원해 이목을 끌었다.

펄스나인의 도전에 여러 곳이 화답했다. 우리은행이 국내외 유명 액셀러레이터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자 내놓은 위비핀테크랩에서 공간 투자를 받은 상태다. 이곳에서 여러 액셀러레이팅도 받는다.

글로벌 컴퓨팅 회사인 엔비디아(NVIDIA)에서 스타트업 ‘인셉션 멤버십(inception membership)’을 받았다. 다양한 인프라를 지원받을 뿐 아니라 엔디비아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해외 파트너와의 연계에도 도움을 얻는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협력사이면서 고객사이다. 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컴퓨팅 자원이 필요한데, 이를 지원받으면서 TTA의 기념품 제작을 돕기도 한다. 서울산업진흥원도 지원한다.

전 분야 그래픽 AI 기술 도입해 ‘문화 액셀러레이터’ 될 것

펄스나인의 궁극적인 꿈은 ‘포스트 어도비(Post Adobe)’, ‘넥스트(Next) 어도비’이다. 어도비 프로그램처럼 이미지나 영상, 3차원(D)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래픽 분야에 AI 기술 도입을 지향한다.

물론 지금은 어도비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순 없다. 다만 10년이든 20년이든 꾸준히 기술 개발에 힘써 점차 영향력을 키워갈 예정이라는 게 박지은 대표의 설명이다. 문화 액셀러레이터로서 관련 산업 전 분야에 AI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포부도 더했다.

펄스나인이 미술 분야에 그래픽 AI 기술을 먼저 선보인 것도 해당 분야에는 어도비의 진출이 두드러지지 않은 까닭이다. 웹툰 분야에도 곧 그래픽 AI 기술을 도입할 예정인데 이 역시 앞선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페인틀리 툴로 그려낸 웹툰. 스케치부터 채색 작업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 김평화 기자
웹툰은 만화 산업과 달리 AI 프로그램 개발이 더뎠다는 게 박 대표의 말이다. 그는 "만화 산업은 일본이 종주국으로 클립 스튜디오 등의 솔루션이 마련된 상태다. 반면 웹툰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인데 성장을 막 시작했기에 솔루션 개발이 부진했다"면서 "10월에는 웹툰에 최적화한 페인틀리 툴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페인틀리 툴을 사용하면 AI로 웹툰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 채색도 할 수 있다. 과거 화질이 낮은 웹툰을 복구해서 최신 웹툰 스타일로 바꿀 수도 있다. 펄스나인은 향후 웹툰 에이전시나 제작 업체와 손잡고 해당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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