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제로페이 그 무모함과 무지에 대하여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19.12.12 06:00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나라 인프라와 시스템도 불과 30년 전 만해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분야마다 선진국을 열심히 배워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불시스템(payment system)이다.

    70년대 말 국내은행이 발행하기 시작한 신용카드는 미미했다. 주로 외국 여행객들이 호텔, 백화점, 특정지역에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아득한 기억이 되었지만 당시 신용카드를 제시하면 외국인이 많이 내점하는 영업장은 인쇄된 블랙리스트 명단을 보거나 아니면 카드사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불량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신용카드가 확산한 계기는 역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이었다. 아시안게임으로 입국한 외국인의 신용카드 사용 불편을 개선해주기 위해 1984년에 지금은 LGU+에 인수합병된 데이콤을 중심으로 개발해 지금처럼 POS 단말을 설치한 카드 가맹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보적인 카드승인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로 외국 패키지(BASE24)를 도입해 썼다. 외산의 POS 단말을 검토하면서 제일 이해하지 못하던 기능이 현금서비스(Cash Advance)와 체크카드(Debit Card)였다. 가맹점에서 현금을 서비스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을 알 수 없었다. 왜 신용카드를 안 쓰고 체크카드를 쓰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외국에 가본 적이 없던 시절이다.

    신용이 부족해 신용카드를 발행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선진 시스템을 배워 일일이 구축하기까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았다.
    사용이 안전하고 편리해진 카드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을 앞두고 독점적인 밴(VAN)회사가 승인되어 시스템적으로 모든 은행 및 카드사를 연결하고 가맹점을 확대하면서부터다. 역시 초기에 외국 패키지 소프트웨어(ON/2)를 채택했다.

    지금은 10여개의 VAN사들이 영업을 하며 마치 수수료를 너무 많이 받아 중소상인들이 어려워진 것처럼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나라의 지불시스템(payment system)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신용카드 확대로 지하경제를 사라지게 만드는데 공이 컸다. 이들을 통해 전국의 모든 영업장에 POS단말이 설치됐다. 소액과 현금결제까지도 모두 포착해 국세청으로 자동 보고하는 시스템으로까지 발전했다.

    다른 한편으로 신용카드가 현금카드의 역할을 겸하면서 금융결제원을 중심으로 연결된 금융공동망을 통해 전국 모든 금융기관의 자동화기기 어디서나 입출금이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됐다. 지불수단이 모바일 기술과 앱, 블록체인 까지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까지 대한민국이 신용카드를 매개로 한 세계 최고의 지불결제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한 국가의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이용자의 이득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야 확산이 가능하다.

    신용카드 확산을 통하여 정부는 소비촉진과 세원 포착으로 지하경제를 차단할 수 있다. 서비스제공자는 가맹점이 늘어나고 사용빈도가 높아지면 사업이 커질 수 있다. 소비자는 세금혜택, 최대 43일까지의 여신, 무상 할부, 각종 마일리지 및 포인트 등등을 누릴 수 있게 되니 완벽한 삼박자라 할 것이다. 공공기관이 서비스를 디자인 할 때 명심할 대목이다.

    제로페이는 이 원칙에 어긋난다. 나는 박원순시장의 손을 잡고 중소벤처부, 은행장들이 제로페이를 선언하는 날 제로페이가 안 되는 이유를 칼럼으로 쓴 적이 있다.
    우선 수수료 ‘제로’라는 말이 선동적이다. 거래 당사자가 처리해야 할 비용을 전 국민한테 전가시킬 뿐이다. 그 뿐 아니라 국가 여러 시스템과의 연동에 대한 고민이 없다. 더구나 각 지역은 제각각 지역화폐(화폐라는 말을 붙이도록 허락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라는 걸 만들어 홍보한다. 제로페이는 서울페이인 것이다.

    정부(서울시)는 중소상인들의 카드수수료를 제로화 시켜준다고 하면서 그 뒤에 작동하는 금융시스템을 무시했다. VAN사가 중소상인들한테 과도한 수수료를 받는다지만 사실 소액이라고 전산,시스템 처리 비용이 적게 들어가지 않는 데 고민이 있다.

    그래서 기껏 고안한 것이 VAN사를 거치지 않고 은행을 통해 구매자의 계좌에서 상인의 계좌로 직접 이체되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 처리 비용을 무시한 것이다. 은행이 처리하는 비용을 수수료로 환산하면 오히려 현재의 처리비용보다 더 들어 갈지도 모른다. 차라리 VAN사 처리 비용을 누가 보전해주면 간단할 것이다.

    우선 은행 입장에서는 제로페이가 확대되면 될수록 비용 부담이 늘어나 실이 더 많은 서비스다.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권의 눈치보며 동의했겠지만 전혀 자발적으로 확대되기를 원하거나 확대시킬 노력을 할 이유가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떤가. 앱이라고 하지만 지불수단 하나를 더 가지고 다니는 꼴이다. 더구나 최대 43일의 외상이 가능한데 사용하면 계좌에서 즉시 빠져나간다. 극단적으로 소액이체가 많아지면 일일이 계좌에서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신용카드로 제공 받는 여러 가지 이득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 중소상인들을 돕는다는 자선적 의미를 빼면 사용자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러니 선언 첫날 내가 주장 했듯이 전혀 자생적으로 확대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안한 꼴이다. 확산이 안되니 공무원들만 들볶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 공무원들이 인근 식당을 이용해도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비용처리를 안 해준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적인 의지만으로 무모한 일을 벌려 여러 가지 폐해를 만드는 일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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