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과 딜라이브 간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이 결렬됐다. 유료방송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일 오후 관계자를 불러 중재에 나선다. 양사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팽팽하게 대립한다. CJ ENM은 콘텐츠 가치에 맞는 사용료 인상을, 딜라이브는 업계 상황을 반영한 가격을 요구한다.

CJ ENM과 딜라이브가 프로그램 사용료 문제로 부딪혔다. / 기업 로고
CJ ENM과 딜라이브가 프로그램 사용료 문제로 부딪혔다. / 기업 로고
CJ ENM은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시 초유의 블랙아웃(방송 송출 중단) 사태도 감수할 자세다. 콘텐츠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친 격이다. 콘텐츠와 IPTV, 케이블 TV 업계도 혼란에 빠졌다.

양사간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이 원만히 이뤄지면 IPTV와 케이블TV 구조조정 등 콘텐츠 업계 개편이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지상파나 종편 수준의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지만, 정작 프로그램 사용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콘텐츠 제작사가 얼마나 합리적인 대가를 받느냐가 관건이다.

CJ ENM "제값 받겠다" vs 딜라이브 "일방적 20% 인상 너무해"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의 포문은 CJ ENM이 열었다. 최근 4년간 프로그램 사용료를 동결했다며 3월 15~30% 인상안을 IPTV, 케이블TV 업계에 제시했다. 대상 기업 절반쯤은 인상안에 동의했지만, 딜라이브를 포함한 일부 플랫폼 기업은 재협상을 요구했다.

CJ ENM은 지상파, 종편과 달리 수년간 프로그램 사용료를 동결했다며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콘텐츠 제공 중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을 하는 지금까지의 ‘사후계약’ 대신, 협상 후 콘텐츠를 제공하는 새로운 관행도 요구했다. 그래야 콘텐츠의 대가를 정당하게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CJ ENM은 3월 이후 인상률 조정을 포함, 여러 제안을 했다. 하지만 딜라이브가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협상 결렬 시 ‘딜라이브가 시청자에게 프로그램 송출 중단을 알려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공문을 받은 딜라이브는 가격 인상 폭이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이미 프로그램 사용료 예산 중 25%를 CJ ENM에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 TV 시청자가 정체 혹은 조금씩 줄고 있는 가운데 프로그램 사용료만 과도하게 높일 수 없다고 말한다.

딜라이브는 중소 프로그램 제작사나 케이블 TV 등 콘텐츠 업계를 배려해 원만한 폭의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원한다. CJ ENM이 프로그램 송출 중단까지 암시하는 등 강경하게 나오는 것에 반발하는 입장이다.

협상 결렬 시 초유의 블랙아웃, 타결 시 콘텐츠 업계 개혁 가속화

CJ ENM과 딜라이브 간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초유의 블랙아웃이 현실화 한다. 딜라이브 시청자 약 200만명은 OCN, tvN, 투니버스 등 CJ ENM의 13개 채널을 볼 수 없다.

지금까지 프로그램 제작사, 배급사 간 갈등은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블랙아웃처럼 극단적인 조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해진다.

불합리한 프로그램 사용료 산정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콘텐츠 업계 발전을 막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콘텐츠 업계가 인기와 영향력에 따른 대가, 즉 수익을 제대로 내야 동기를 얻고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양사가 금방 협상을 끝낼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협상이 원만히 이뤄질 경우 CJ ENM은 프로그램 사용료와 새로운 계약 관행을, 딜라이브는 인기 콘텐츠를 각각 얻게 된다. 나아가 콘텐츠 시장은 개혁기를 맞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지상파 TV를 비롯한 플랫폼이 콘텐츠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세계 시청자 사이에서 코드커팅(지상파, 유선 TV 대신 온라인, 무선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 현상이 가속화되며 콘텐츠의 영향력은 플랫폼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수익은 콘텐츠 제작사보다 플랫폼이 더 많이 가져간다.

케이블TV와 IPTV간 합종연횡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딜라이브와 현대HCN 등 케이블TV 기업이 인수합병 시장 매물로 나왔다. 각각 가입자수 기준 케이블 TV 업계 3위와 5위인 알짜 기업이다. 콘텐츠 제작사와의 분쟁은 인수합병에 나쁜 영향을 준다. 단, 케이블 TV 업계는 아직 협상이 진행중이므로 인수합병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말한다.

딜라이브 한 관계자는 "정해진 것은 없고, 9일 있을 정부의 중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CJ ENM 측 역시 "중재에 성실히 임하겠다. 협상이 원만하게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고 말을 아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