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시작된 코로나19 연구 민주화
보험제도·국민건강보험법 덕에 韓 의료 빅데이터 함박웃음
연구 갈증 높은 분야는 코로나19 약제·질병 특성
해결과제 산적 "데이터 표준화·접근성 높여야"

"너네 이거 봤어?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한국인 의료 이용 데이터를 세계 연구자들한테만 공개한데. 한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사이트에서 연구 모델을 설정하고 관련 코드를 산출하면 심평원이 데이터를 돌려서 결과 값만 우리한테 전달해주는 식이야. 진짜 대박이니까 너네도 해봐."

올해 4월 트위터에 등장했던 글이다. 스탠포드대학 연구소에 재직하는 한 한국계 미국인 연구자는 심평원 사이트 링크를 함께 게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염병에 세계 연구자들이 막막해하는 가운데 해당 글은 순식간에 공유됐다. 데이터 공유 4개월만에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이탈리아, 중국, 호주, 인도 등 58개국 1587명의 연구자가 심평원 연구 사이트에 가입·등록했다. 신청된 연구 프로젝트만 총 412건에 달한다. 이를 활용한 논문도 세계 학술지에 20건 이상 제출된 상태다.

김선민 심평원장/ 심평원
김선민 심평원장/ 심평원
IT조선은 3월부터 세계 연구진에게 전 국민 의료데이터를 개방하면서 코로나19 국제협력연구를 추진한 김선민 심평원장을 만났다. 올해 초 부임한 김 원장은 서울대 의학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거쳐 세계보건기구(WHO) 서비스 제공 및 안전국 수석기술관, 심평원 기획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韓 의료 빅데이터 파워 막강…산업 선도 가능성 충분"

김선민 원장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국제협력연구를 개시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독특한 건강보험제도와 국민건강보험법을 들었다.

그는 "장기간 축적된 체계적인 개인 의료 데이터는 한국 건강보험제도 외에는 세계 어디에도 그 유례가 없다"며 "심평원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료내역을 신속하게 청구받아 관련 데이터가 시의적절하게 수집했다"고 말했다. 의료 빅데이터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근간이 제도에 의해 체계적으로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관련 데이터를 개인정보 유출 없이 세계 연구진과 어떻게 공유하느냐였다. 이에 심평원은 국내 코로나19 환자의 임상 데이터 등 원데이터는 외부에 반출하지 않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김 원장은 "대신 연구자들이 심평원 웹사이트에 공개된 샘플데이터를 활용해 희망 연구를 신청하고 관련 분석 코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며 "심평원은 연구자들로부터 작성된 코드를 실행해 결과값만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심평원 빅데이터 연구로 진행된 코로나19 관련 연구/ 심평원
심평원 빅데이터 연구로 진행된 코로나19 관련 연구/ 심평원
이를 통해 신청된 연구 프로젝트는 총 412건이다. 신청된 연구 프로젝트 중 실제 연구 코드를 산출해 심평원에 결과 값을 요청한 사례도 129건에 달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현재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게재된 논문 또는 심사 단계를 거치고 있는 논문은 총 66건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약제 연구(32건)와 코로나19 질환 특성 및 요인(26건), 기타 주제(8건)로 나뉜다. 약제 연구는 ▲코로나19 환자 약물 처방 내역과 ▲항생제 등 치료제로 활용되는 약물군 등으로 집중됐다. 코로나19 질환 특성에 대해서는 ▲코로나19 환자가 앓는 주요 만성질환과 ▲코로나19 고위험군 등이 연구됐다.

"韓 의료 데이터 경제적 가치 무한대"

심평원은 향후 더 다양하고 많은 양의 샘플데이터를 비식별화해 공개하고 표준화 작업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례는 혁신적이었지만 데이터를 직접 다룰 수 없다보니 연구가 제한적으로 이뤄졌다는 세계 연구자들의 아쉬움 때문이다. 15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심평원 연구 사이트에 가입·등록했는데도 실제 분석 코드를 산출해 결과값을 요구한 건이 129건에 그친 배경이다.

김 원장은 "연구자가 직접 데이터를 탐구하고 원하는 수준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유도가 낮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며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많은 양의 샘플데이터를 공개하고, 데이터 형식과 내용 표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웹뿐 아니라 모바일을 통한 연구 접근성 향상에도 주의를 기울일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김 원장은 또 한국이 의료 빅데이터 산업 선도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기간 축적된 한국의 전국민 의료 이용 데이터는 세계 의료 빅데이터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며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선민 원장은 이어 "의료 빅데이터 산업이 성장하면 의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심평원은 앞으로 국내 의료 빅데이터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