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분쟁중인 SK, 자금 확보 다음 행보는

입력 2021.02.24 06:00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은 장기전 양상이다. 최근 영업비밀 침해 소송 결과가 나왔음에도 변함이 없다. LG는 SK 측에 적정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만, SK는 버티기 전략을 펼친다. 합의의 핵심인 합의금 격차는 여전히 큰 간극을 유지한다.

2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는 일부 계열사 지분매각과 기업공개(IPO)를 통해 현금성 자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 SK이노베이션
SK루브리컨츠는 3월 26일 소수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본입찰을 시작한다. 매각 대상은 SK이노베이션이 보유 중인 SK루브리컨츠 지분 100% 중 49%다. 시장에서는 지분 매각을 통해 2조원에 달하는 매각대금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한다. SK는 최근 석유화학 계열사 SK종합화학 지분 49%도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거래 규모가 최대 3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상장예비심사 결과도 주목을 받는다. SK가 SKIET 상장으로 구주 매출을 단행하면 최소 1조원의 현금 마련이 가능하다.

SK는 계열사 두곳의 지분 매각과 SKIET의 IPO를 통해 총 6조원쯤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이 자금을 LG에 치를 합의금으로 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SK는 소문을 완강히 부인했다. 합의금 명목으로 거론되는 것 조차 불쾌하다는 목소리다.

SK 관계자는 "계열사 지분 매각 및 IPO로 인해 얻게 될 현금은 각사별 ESG 경영강화를 위한 재원으로 쓰일 것이고 소송과 별개로 오래전에 결정된 사안이다"라며 "배터리 소송 합의금으로 쓰일 것이란 얘기는 완전히 헛소문이며, 여기에는 1원 한푼 쓸 계획없다"고 말했다.

SK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ITC의 판결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1916년 ITC가 설립된 뒤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해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쓴 사례는 1건도 없다. 하지만 미국의 친환경 정책 강화, 중국과 무역분쟁 등 영향으로 이번엔 다른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 바이든 당선인/ 조 바이든 페이스북
18일 미 CNBC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 공급망에 대한 검토를 지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 에너지장관 지명자는 최근 청문회에서 미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더 많은 배터리가 미국 내에서 제조돼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데이터 제공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93개의 리튬 배터리 셀 제조공장을 보유 중이다. 2030년까지 14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미국은 2030년에도 10개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배터리 공급의 상당 부분을 다른 국가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 내 배터리 제조공장을 최대한 늘리고 지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공급망 검토가 ITC 결정에 따른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SK는 연방고등법원에 즉각 항소할 방침이다. 연방고등법원 판결이 나와야 델라웨어 법원 민사 소송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이 과정만 2~3년이 걸린다.

2010년 이후 ITC 최종 결정에서 수입금지 명령이 나온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총 6건이다. 이 중 5건이 항소를 진행했지만 결과가 바뀐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양사의 배터리 분쟁이 과거 코오롱과 듀폰이 미국에서 6년간 펼친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과 비슷하게 흐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코오롱은 1심에서 1조원을 웃도는 배상액 판결을 받았지만 연방항소법원에서 1심을 뒤집는 파기환송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2800억원의 합의금을 듀폰에 지급하고 소송을 마무리했다.

SK가 항소에서도 패소하면 미 배터리 공장을 ITC가 정한 2~4년의 유예기간만 가동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벼랑끝 전략이다.

LG는 연방비밀보호법에 따른 손해액에 델라웨어 민사 소송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할 경우 배상금이 5조~6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영업비밀 침해로 인한 보상 규모의 근거인 수주금액을 봐도 SK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잔고는 70조원쯤으로 추정된다. 2025년까지 예상 수주액이 120조원임을 감안하면 최소 6조원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SK는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 판결 후 진행한 델라웨어 소송에서 나온 징벌적 손해배상액 최대 규모가 1조원에 불과한데, LG의 요구가 터무니 없다고 본다.

ITC는 조만간 결정문 전체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SK와 LG의 협상은 이 결정문이 공개된 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SK 관계자는 "ITC 최종 판결 전문이 나오면 문제가 된 22개 영업비밀과, 수입 허용 제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자체적으로 합의금을 산정할 계획이다"라며 "LG가 합리적 수준의 금액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LG 관계자는 "경쟁사는 30년간 공들여 쌓은 당사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수십조원 규모를 수주했고, 이제라도 ITC 최종결정을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을 해야한다"며 "향후 유럽, 중국 등 추가 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여부는 전적으로 경쟁사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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