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가상자산 시장에 다사다난이란 표현이 어울릴 법한 적이 없는 듯하다. 연초 김남국 의원 논란과 강남 살인 사건 등 투자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가상자산 기본법’이 서둘러 국회 문턱을 넘고 ‘가상자산 회계기준’또한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제도권 편입의 초석도 마련된 한 해가 됐다.
무엇보다 하반기 들어 비트코인 가격 반등으로 테라·루나 사태 이전 가격을 넘어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곧 승인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탓이다. 내년 1월이면 해당 상품을 만날 것으로 보여 내년 전망 역시 나쁘지 않다.
ETF 승인 희망·반감기 도래에 비트코인 가격 두배로 껑충
30일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전날 가상자산 대표격인 비트코인은 5700만원선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연초(1월 1일) 종가(UTC 24시, 한국시간 오전 9시 기준)와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오른 수치다. 이달 초 한 때 6000만원선을 넘어서는 등, 하반기로 넘어오면서 상승세 힘을 받았다. 단기 고점은 지난 6일 연초 대비 186% 오른 6031만원이었다.
가격 상승세는 지난 10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임박했다는 소식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선물 ETF가 상장된 적은 있지만 현물 상품은 없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현물 ETF는 시장 조작의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수 년째 승인을 거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케일, 블랙록 등 현물 상품 심사를 거절당한 많은 금융기관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소송을 제기한 결과, 지난 8월 미국 법원은 결국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줬다. SEC는 재판에서 진 후 현물 ETF에 대한 검토를 강요받았다.
업계에서는 내년 1월쯤에 현물 ETF 상품이 승인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물상품이 상장된다면 비트코인에 가격 상승세가 더욱 힘을 받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비트코인 반감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도 투심을 자극했다. 반감기란 4년마다 비트코인의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공급이 줄어들며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줄 것이란 것으로 보여진다.
알트코인들 역시 비트코인과 동반 상승을 보이고 있다. 이더리움은 연초 150만원 선에서 거래됐으나, 지난 4월 업그레이드 이후 상승세를 보이며 12월 말 기준 가격은 300만원을 넘나들고 있다.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약 85% 가량 상승한 모습이다.
업비트마저 거래량 반토막…빗썸·코빗은 '수수료 무료' 고육지책
한편 비트코인 가격 오름세에도 불구하고 고금리와 물가상승 등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투심은 아직까진 다소 얼어붙은 상태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 역시 적자 행렬을 보이며 빈손으로 한해를 떠나보낼 걱정에 놓였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일평균 거래금액은 2조9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 감소했다. 거래소 이용자수 역시 지난 2022년 1178만명에서 올해 950만명을 기록, 19%가량 빠져나갔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중 올해 적자를 내지 않은 곳은 1위 거래소인 업비트 뿐이다. 업비트 역시 3분기 영업이익 1018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40%가량 줄었다. 2위를 유지하던 빗썸이 2분기부터 적자로 전환, 10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을 비롯, 코인원과 코빗, 고팍스 등 여타 원화 거래소 모두 적자다.
원화거래가 불가능한 코인마켓 거래소들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코인마켓 거래소들의 일평균 거래금액은 지난해 200억원이었으나, 올해 상반기 평균 10억원으로 감소했다. 21개 코인마켓 사업자중 5개 사업자는 일평균 거래금액이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사실상 개업휴점 상태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수수료 무료’라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빗썸은 지난 10월초부터 거래 수수료 전면 무료 정책으로, 27일 기준 업비트를 뛰어넘는 4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코빗 역시 지난 10월부터 수수료 무료 정책으로 4년만에 국내 거래소 거래량 3위자리를 탈환했다.
이 같은 출혈경쟁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거래소 매출 99%인 수수료를 포기한 것이 결국 상위 거래소간 점유율 경쟁을 더욱 심화시켜 자금 여유가 있는 거래소만 살아남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앞서 지난 13일 투자자 단체는 빗썸의 수수료 무료 정책은 ‘부당염매’ 혐의라며 공정위에 고발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이상훈 기자 lees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