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텔이나 AMD의 x86 기반 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컴퓨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PC의 역사는 인텔의 x86 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사용한 ‘IBM PC’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의 의미 자체를 특정 기술 조합에 한정하는 결과를 만들었을 정도로 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에 발표한 ‘코파일럿+ PC’는 첫 지원 제품이 x86 기반 프로세서가 아닌 'Arm' 기반 프로세서라는 데서, 전통적인 PC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이 ‘코파일럿+ PC’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운영체제에 탑재한 다양한 인공지능(AI) 관련 기능을 디바이스 수준에서 원활히 돌릴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40TOPS(초당 40조번 연산) 성능의 신경망처리장치(NPU), 16GB 이상의 메모리와 256GB 이상 저장 공간 등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준에서 핵심은 ‘NPU 성능’으로, 현재 시점에서 이 기준을 만족시키는 PC용 프로세서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X 시리즈’ 뿐이다. 인텔은 하반기 발표 예정인 ‘루나 레이크(Lunar Lake)’에서, AMD는 하반기 발표가 예상되는 ‘스트릭스 포인트(Strix Point)’에서 40TOPS 이상 성능을 갖춘 NPU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PC 업계에서는 이 40TOPS 성능이 최신 윈도의 ‘코파일럿’을 온디바이스 구동하는 데 필요한 성능으로 알려졌고, 차기 윈도를 위한 시스템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몇 년간 하반기 중 윈도의 대형 업데이트를 제공했고, 차기 버전이 될 ‘윈도11 24H2’나 ‘윈도12’에서 코파일럿이 온디바이스로 PC에 본격 탑재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인텔과 AMD의 새로운 PC용 프로세서 출시 시기와도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코파일럿+ PC’는 전통적인 PC용 프로세서 파트너들의 신제품 출시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에 첫 ‘코파일럿+ PC’는 퀄컴 ‘스냅드래곤 X 시리즈’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기존의 x86 기반 윈도와는 다른 ‘윈도 on Arm’을 사용한다. 두 윈도는 같은 윈도지만 애플리케이션 바이너리 차원에서는 호환성이 없다. 물론 x86용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에뮬레이터’가 있지만, 성능과 효율, 호환성 모두에서 네이티브 앱 대비 손해가 컸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와 퀄컴이 Arm 기반 플랫폼용 윈도를 갑자기 내놓은 것도 아니다. 이미 몇 년간의 시도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x86 중심으로 치우쳐진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디바이스의 성능과 가격 등 경쟁력에 문제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퀄컴은 이 Arm용 윈도 플랫폼에서 독점 계약까지 하면서 이 시장의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지금까지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 독점 계약은 이번 세대로 마지막이 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퀄컴에는 어찌 보면 ‘마지막’ 기회였을 수 있다.
삼세번을 넘어 마지막일지 모를 Arm 아키텍처 기반 ‘코파일럿+ PC’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단은 전통적인 PC 생태계에서 주요 대형 업체들이 적극 참여한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 지금까지 발목을 잡던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는 필수 애플리케이션의 네이티브 지원과 함께, 클라우드와 AI 시대에 애플리케이션에 중요한 가치가 바뀐 것이 기회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생태계는 다양한 아키텍처를 포용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브라우저’를 ‘플랫폼’으로 다룰 수 있는 시대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PC 생태계에서는 현실적인 제품의 성능과 경쟁력, 지금까지 쌓인 ‘레거시’에서 x86 프로세서가 큰 경쟁력을 가졌지만, 앞으로의 시대에는 꼭 x86 프로세서만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게 될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궁극적으로는 x86 생태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택지를 아우르는 유연한 ‘멀티 플랫폼’ 전략을 보는 모습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의 하드웨어 아키텍처 지원보다는 그보다 위에서의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관점일 것이다.
이번 ‘코파일럿+ PC’는 퀄컴과 Arm에 있어 윈도 생태계로의 확장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대세’로 전환되기에는 해결해야 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코파일럿+ PC’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인텔과 AMD CPU를 사용해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AI PC에서 시작된 PC 생태계의 변화가 수십 년 만의 춘추전국시대, 르네상스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되는 바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