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장과 매우 가까운 친인척 관련 비리다 보니 은행 내부의 의사결정 관여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은행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현 집행부 내에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한 지상파 방송에 출연,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 등 경영진 중 누군가는 물러나야 사태가 잠잠해질 거라는 관측이 대다수인 이유다.

금융당국은 임종룡 회장과 조병규 행장이 이번 부당대출건에 대해 보고를 받고도 길게는 1년간 감독기관에 보고하거나 공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감원 감사 결과 조 행장에게는 지난해 9월쯤 보고됐고, 임 회장은 최소 올 3월 이전에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임 회장의 부당대출은 우리은행뿐 아니라 카드, 저축은행, 캐피탈 등에서도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월 우리금융저축은행에서 7억원의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이 실행됐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이 이미 지난해 손 전 회장의 부당대출을 인지한 상태에서 추가 대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복현 원장의 공개 비판 후 임종룡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임 회장은 “조사 혹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저와 은행장을 포함한 임직원은 그에 맞는 조치와 절차를 겸허하게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우리금융 이사회는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승인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최근 불거진 논란과는 별개로, “오버페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대로 낮은 가격으로 인수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엔 갈 길이 멀다. 금융지주사의 보험사 인수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지 않아 이번 부당대출건의 영향을 받지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오지만, 당국이 ‘사업계획 타당성’의 범위를 어디까지 고려할지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이 무슨 자신감으로 인수를 결정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감독당국은 이미 우리금융그룹이 뭔가를 숨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계열사 전반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를 예고했다. 이미 계열사를 상대로 수시검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내년 말 예정된 우리금융의 정기검사도 1년이나 앞당겼다. 신임 회장과 행장이 온 지 2년 가까이 지나서야 사건이 드러난 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이유에서다.

설상가상으로 금감원은 지난달 출범한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조사도 이어나갈 예정이다. 지난 5월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없었는지 살핀다는 설명이다.

어느덧 임기 절반을 보낸 임종룡 회장은 ‘종합금융그룹’으로의 도약 발판을 마련한 최고경영자(CEO)로서 박수받아 마땅한 성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생명보험사 인수가 무탈히 마무리되면 지주사 전환 후 5년 만에 은행뿐 아니라 보험·카드·증권·저축은행·캐피탈 등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에 성공한 수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외화내빈이다. 내부통제 실패라는 과오 앞에 종합금융그룹의 출범은 신기루일뿐이다. 금융위원장 출신의 ‘국내 4위 금융지주사 CEO’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연임은커녕, 불명예 퇴진의 멍에를 쓰지 않기만 바라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