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제로'를 강조해 왔던 신한금융그룹이 그룹 내부통제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터진 신한투자증권의 1300억원 규모 유동성공급자(LP) 운용 손실을 두고 금융당국이 ‘금융사고’로 보고 중징계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 사태때 처럼 CEO 중징계가 이뤄진다면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사장의 거취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내부통제가 미비점이 발견된다면 책임론의 불똥이 신한지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5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신한금융투자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을 단순한 자금운용의 실패가 아닌 ‘금융사고’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신한금융투자가 해당 사실을 공시한 이후 즉각 현장검사를 진행했으며 윗선이 연루돼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1300억여원 LP 손실이 핵심이다. 지난 8월 초 ETF(상장지수펀드)의 LP 담당 직원이 가격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추가 수익을 내기 위해 허용되지 않은 선물 매매에 나서면서 발생했다.
지난 8월 5일 국내 증시는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주가가 폭락하는 ‘블랙먼데이’를 겪었다. ETF 상품 특성상 지수를 추종하기 위한 헤지가 필요했지만, 대비가 늦은 증권·운용사들은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신한투자증권의 해당 직원은 이를 숨기기 위해 허위 스왑거래를 등록했고 이 과정에서 담당 팀장과 부장이 공모한 혐의를 포착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설명이다.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 부문 부원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신한투자증권에 대해 “개인은 당연하고 조직적 문제도 굉장히 크다”며 “신한은 수직적 통제와 수평적 통제 두가지 다 심대한 문제점이 노출됐고 실무적인 설계, 경영상의 문제점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통제 부분은 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미마련 등 따져봐야 한다”면서 “조직적인 부분의 설계·운영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치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감원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강력한 처벌을 시사했다. 함 부원장은 “처벌 수준 관련해서 행위자가 안 좋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고 조직적인 설계 운영상의 문제점이 크면 그 조치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핵심은 LP부서는 헤지 목적(매매를 하는데)인데 어떻게1300억원 손실이 날 때까지 질러댈 수 있는 것인가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윗선의 개입이 있다면 신한금융지주 차원의 계열사 내부통제 여부도 검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대표 ‘책임론’은 물론, 지주사도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이 무더기 중징계를 받은 사례를 떠올리며 신한투자증권 CEO 징계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책무구조도 첫 사례 오명은 피해가겠지만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미마련’에 해당하면 CEO 중징계를 피하기 힘들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라임 사태 때 CEO 제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라임 펀드 판매 기간 CEO 였던 김형진‧김병철 전 사장은 직무 정지와 주의적 경고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각각 임기를 4개월, 9개월 남기고 사임했다.
김상태 대표가 중징계를 받게 된다면 거취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금감원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임기를 마칠 수 있지만 그룹 차원에서 이러한 리스크를 안고 갈지가 미지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인사에서 연임에 성공해 2년 임기를 더 받았다. 임기를 1년 이상 남겨 둔 상황에서 중징계를 받게 된다면 남은 임기를 채우기 힘들 수도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사태를 두고 CEO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 수습에 나섰지만 올해 초 신년사에서 내세운 ‘고객·영업·효율 중심을 통한 바른 성장’ 경영 계획 자체가 무너지게 됐다.
이번 금융사고는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3분기 16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분기 131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뒤 적자 전환이다. 3분기 누적으로는 190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4.8% 줄어든 수치다.
신한투자증권의 적자 전환은 신한금융 전체 실적도 끌어내렸다. 신한금융은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1조238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의 예상치인 1조3300억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비이자이익 증가로 최대 실적을 기록한 KB금융지주와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