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도 서버 제조 업체 슈퍼마이크로에 위기가 커지고 있다. 회계부정 의혹과 함께 수출 규정을 어기고 중국, 러시아와 거래했다는 혐의까지 있다. 2024회계연도 연례 보고서 제출도 지연돼 상장 폐지의 위기에도 놓였다. 잇단 악재 속에 주가는 6개월 전과 비교하면 81%나 내렸다.

슈퍼마이크로는 1993년 설립됐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 데이터센터를 위한 서버와 스토리지 등 인프라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HPE와 델, 레노버 등 전통적인 대형 서버 ‘벤더’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x86 서버 시장에서는 인텔과 AMD 등 칩 제조사들과 레퍼런스 플랫폼을 같이 만들기도 했고 GPU 서버 시장의 성장에 수혜주로 꼽힌 바 있다.

컴퓨텍스 2024 현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싸인을 남긴 슈퍼마이크로의 GPU 서버 / 권용만 기자 
컴퓨텍스 2024 현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싸인을 남긴 슈퍼마이크로의 GPU 서버 / 권용만 기자 

슈퍼마이크로, 매출 부풀리기와 수출규정 위반 의혹 제기

슈퍼마이크로의 위기는 지난 4월 전직 직원이 회사와 찰스 리앙 CEO를 회계부정 혐의로 고발하면서 처음 제기됐다. 당시 제기된 의혹은 완료되지 않은 판매를 매출에 포함하는 등으로 매출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지난 8월에는 공매도 전문 투자사 힌덴버그리서치가 보고서를 통해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과거 회계 부정에 연루된 임원의 재고용, 의심스러운 특수관계인 거래 등이 포함된다. 특히 슈퍼마이크로와 찰스 리앙 CEO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 간 부적절한 거래에 대한 의혹이나 미국 정부의 제재 적용 시점 이후에도 제품을 러시아로 배송된 사례도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마이크로는 이 보고서 발표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해야 할 2024회계연도 연례 보고서의 제출을 미룬 상태다. 지난 10월 말 슈퍼마이크로컴퓨터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EY(Ernst&Young)는 회사의 지배구조 및 투명성 문제로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며 사임했다. 

EY가 사임하면서 18일로 예정된 마감 기간까지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기간 내 보고서가 제출되지 못하는 경우 다시금 나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슈퍼마이크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연례보고서를 내지 못했던 사유를 제출하고, 제출을 위한 추가 시간을 요청한 상황이다.  

슈퍼마이크로는 현재 상황에서도 “고객에 제품과 기술을 전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엔비디아는 GPU 서버 제작 주문을 타 제조사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마이크로의 주가는 지난 6개월간 81% 떨어졌다 / 구글 금융 페이지 갈무리 
슈퍼마이크로의 주가는 지난 6개월간 81% 떨어졌다 / 구글 금융 페이지 갈무리 

슈퍼마이크로 상장폐지 위기, 이번이 ‘두 번째’

서버 시장에서 슈퍼마이크로의 점유율은 델과 HPE에 이어 5~7%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고객사 중 세 번째로 큰 규모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델이나 HPE, IBM의 x86 서버 사업을 인수한 레노버와 달리, 슈퍼마이크로는 하드웨어 집중적인 포트폴리오 성격을 가진 점도 특징이다. 인텔이나 AMD와 새로운 플랫폼의 레퍼런스 설계를 함께 만들어 오기도 했다.

특히 GPU 서버 시장에서 비중이 크게 다뤄졌던 슈퍼마이크로의 ‘매출 부풀리기’ 의혹은 ‘AI 거품론’과 더불어 GPU 서버 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서 웃돈까지 주면서 구해야 했던 GPU 서버의 수요 상당 부분이 ‘허상’이었다는 점은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도 있을 부분이다. 

사실 슈퍼마이크로의 상장폐지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8년에도 제출해야 할 보고서들을 제 때 제출하지 못해 약 2년간 상장 폐지됐었다. 이 때는 202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1750만달러(약 245억원)의 벌금을 내고 조사 문제를 마무리 지으며 재상장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슈퍼마이크로는 지난 2018년 제기된 ‘중국 군부에 의해 설치된 하드웨어 백도어’ 관련 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다. 슈퍼마이크로가 중국 공장에서 시스템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중국 군부가 특별히 만든 칩이 설치돼 민감한 데이터를 유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슈퍼마이크로는 이에 대해 “아무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미중 무역분쟁과 함께 ‘공급망 보안’ 주제에 대한 중요성도 크게 높아졌다.

한편, 슈퍼마이크로는 지난 5일(현지시각) 감사를 받지 못한 상태의 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2024년 7~9월에 해당되는 2025회계연도 1분기 슈퍼마이크로의 매출은 59~60억달러(약 8조2564억~8조3988억원)으로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지만 조정 주당순이익은 75~76센트로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2분기 매출은 55~61억달러(7조6978억원~8조5375억원) 정도를 제시했는데 이 또한 시장의 전망에 미치지 못했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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