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 피해가 확산됨에 따라 현지 진출한 국내 보험사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활발한 사업을 벌여왔던 DB손해보험을 향한 우려의 시각이 상당하다. 한 때 국내 보험사의 해외진출 모범사례로 꼽혔지만, 이제는 시장 리스크의 대명사가 될 처지에 놓였다.
16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미국 서부 지역을 삼켜버린 산불에 DB손보가 대규모 보험금을 지급, 적지 않은 손실을 볼 거란 지적이 나온다.
DB손보는 이번 화재로 보유 계약물건이 전부 피해를 입는다는 추정하에 최대 6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DB손보는 산불이 발생한 미국 LA 7개 지역에서 37개의 계약을 갖고 있다. 이튼지역에서 주택종합보험 34건, 팰리세이드지역에서 소상공인종합보험 3건을 보유 중이다.
회사측은 이번 화재로 복원보험료 등 추가적인 지출이 일부 발생할 수 있겠지만 회사의 펀더멘털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당초 시장에서는 회사측보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봤다. 피해규모가 1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국내 보험사 가운데 DB손해보험의 익스포저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산불로 1000억원대 초반의 손실액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LA 산불 소식이 전해지면서 DB손보 주가는 약세를 거듭했다. 10일 0.4% 내리더니 13일엔 1.5% 하락, 그러다 피해규모만 1000억대가 될 거란 진단이 나왔던 14일 8% 넘게 폭락하며 거의 1년 만에 9만1000원대까지 빠졌다.
현지 지점 외형 확대하자… 괌·하와이 사고 지속
DB손보는 국내 보험사 중에서도 미국 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이다. 1984년 처음으로 괌에 지점을 연 이후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뉴욕 등 4개 지점을 뒀다. 캘리포니아에는 미주 사업본부를 뒀다. 주력 상품은 상업용 패키지, 주택화재, 상업용 자동차 보험 등이다.
매출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해외원보험료는 5173억원으로 2023년 3분기 4171억원으로 24%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손해보험사의 전체 해외원보험료 8916억원의 58% 이상을 차지하는 숫자다.
그러나 몸집이 커짐에 따라 리스크도 확대된 모습이다. 2023년 괌 태풍과 하와이 산불사고 등의 재해가 연달아 발생하며 손실 규모가 1억8000억원으로 커졌다. 손해율은 전년 대비 19.6%p 상승한 85.6%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본사 전체 손익에도 타격을 입었다.
지출도 증가세다. 지난해 3분기 DB손보가 해외원보험으로 사용한 비용(보험금·환급금 등)은 3319억원으로 2162억원에 비해 53.5% 증가했다. 해외 사업 영역 확대가 양날의 검이 됐다는 평가다.
美 기후변화 리스크 심화… "보험료 인상" 수면 위
이번 미국의 대형 산불에서 보듯, DB손보의 미국 진출에 기후변화가 뜻밖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현지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지점 형태로 운영하며 현지 법인이 없는 상황이라 향후 미국 시장 대응 전략도 수정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진단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보험사들이 LA산불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지역 내 주택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거나 아예 상품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캘리포니아의 주택보험료는 미국 전체 평균보다 저렴한데다 당국 규제로 미국에서 유일하게 재보험 비용을 보험료에 포함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은 "미국 5대 손해보험회사가 자연재해로 인한 손해율 급증으로 일부 지역에서 보험 인수를 중단하는 등 기후변화에 의한 보장 공백이 확대되고 있어 리스크 평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자연재해의 경우 원인에 따라 피해가 상이하므로 자연재난별 리스크 평가 및 추가 피해 보상이 가능한 보험상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DB손보도 수익성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선 주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실제 캘리포니아에서 수익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는 현지 보험사가 상당수다. 그 와중에 DB손보와 같은 외국 보험사의 보험료 인상 요구가 먹힐지는 미지수다.
회사 관계자는 "LA산불 사고가 향후 보험료 인상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미국 현지보험사가 아닌데다 점유율도 높지 않다보니 보험료를 주도적으로 올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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