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가 다른 기업들의 신용 리스크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올해도 ‘4월 위기설’이 떠올랐다. 건설에서부터 화학, 배터리 업계까지 부채비율이 높고 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아서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위기설이 퍼지던 것에 홈플러스 사태가 기름을 부은 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새로운 위기가 아닌 업계 구조조정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1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홈플러스 사태가 다른 업계 신용 리스크로 비화하고 있다. 특히 이미 위기설이 떠돌던 부동산 업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오는 4월 건설사와 함께 배터리 등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내수침체 개선이 지연되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발(發) 관세 위기 등이 겹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경기 침체 상황에서 줄도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지난 4일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을 대규모 자본지출과 차입금 부담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조정한 바 있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경색과 건설 원자재 가격 급등, 경기 침체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 신동아건설에 이어 대저건설, 삼부토건 등이 이미 법정관리 신청을 낸 상태다.
여기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위기설이 등불처럼 번졌다. 홈플러스의 갑작스러운 기업회생 신청에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이었던 A3 등급 기업들을 향한 불신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은행권 여신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홈플러스의 금융 부채는 약 2조원으로, 메리츠금융 1조2000억원, 은행 한도 대출 1100억원, 기업어음 2500억원, 매입채무 유동화 자금 3500억원 등이다. 홈플러스는 채무 변제를 하겠다고 내걸었지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에 대한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 대출 규모가 크지 않다 하더라도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해서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익스포저, 채권 투자자 피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증권사를 통해 회사채 등 금융 상품을 산 일반 투자자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들여다 본다. 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신청 직전인 지난달 25일 CP를 발행한 것도 살펴본다. 기업회생 신청을 알면서도 CP를 발행했다면 사기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고의성을 보겠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는 공동회의를 열어 기업회생절차 관련 대응책 논의를 위한 공동 회의도 시작했다.
다만 홈플러스 사태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경제를 위협할 만한 ‘위기’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홈플러스 측은 납품업체와의 채무나 금융권 채무에 대한 변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 등에선 업황 악화로 인한 것으로 새로운 위기가 아닌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홈플러스 사태는 경기가 침체돼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은 맞지만 4월 위기설은 과도하다고 본다”며 “유통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구조조정이 되는 과정으로 과거와 같은 금융위기, 거시적으로 한국 경제를 흔들만큼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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