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세계보건기구(WHO)의 ICD-11 기준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국내 조사기관의 결론이 나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은 5월 19일 게임이용자 행동유형을 5년간 추적한 종단연구인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연구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아동·청소년 924명, 성인 701명을 대상으로 5년간 동일한 패널을 구성해 관찰한 국내 최초의 게임 종단 데이터다.
분석 결과,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WHO 기준에 해당되는 문제행동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과몰입군보다 일반이용자군의 게임이용시간이 더 길게 나타나 게임 시간만으로 문제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이 확인됐다. 또한, 게임이용자의 게임행동 유형이 자주 바뀌는 것으로 조사돼,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이 보다 다차원적인 맥락에서 검토돼야 함을 시사했다.
또 게임이용 행동이 지속적으로 문제적 성향을 보이는 비율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WHO의 기준상 게임으로 인해 12개월 이상 삶의 통제력 상실, 부정적 영향 지속 등이 보여야 하지만, 해당 패널 내 이 조건을 충족한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WHO의 게임이용장애(ICD-11) 코드가 국내 현실과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콘진원은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아동·청소년 및 성인의 게임이용 시간, 이용 게임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진학, 학업환경 변화, 취업, 직업환경 등의 생애주기 요인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연령 증가에 따라 게임 이외의 다양한 여가활동으로 전환되는 경향 또한 확인됐다.
조사기간 동안 학부모와 자녀가 인식하는 게임 관련 문제행동의 수준 역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연령 증가 및 성장발달에 따른 게임행동의 변화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자기효능감이 높거나, 학업성취 만족도가 높을수록 ‘선용군(게임을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에 포함될 확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반면, 주의집중이 떨어지거나 과잉행동 경향이 있을 경우 ‘과몰입위험군’ 포함 확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형제·자매와 함께 게임을 하거나, 또래와의 오프라인 사회관계가 많을수록 선용군 포함 확률이 증가했다. 부모의 양육태도, 교우관계, 지역사회 활동 경험 등도 게임이용 행태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콘진원은 이번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게임이용자 패널데이터 활용 논문 공모전’을 통해 실증연구 확산을 도모한다. 참가 대상은 전국 대학(원)생 및 일반 연구자로, 개인 또는 3인 이내 팀으로 신청 가능하다.
유현석 콘진원 원장직무대행은 “게임이용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아닌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라며 “이번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와 경진대회를 통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의의 학술적 기반을 마련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한편, 콘진원은 13일 오후 2시부터 한국정책학회(학회장 박형준)와 공동으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세미나’를 서울 중구 CKL기업지원센터에서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게임이용장애 관련 국내 연구 발표와 논의를 통해 질병코드 등재 대응과 정책 결정의 기준 및 방향성을 제시한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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